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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5.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09

불안함에 쌓은 믿음을 해체하는 일


09/

  사람은 직접 겪어야만 아는 것인지.
그렇게 나는 교실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몇 년을 보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결국 나에게 가장 적합한 모습의 교사가 되어야겠구나.

  그동안 나는 '교사라면 응당 이래야지' 하는 것들에 얽매여 내 본디 모습을 조금씩 내어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교사라면 학생들을 차갑고 엄격하게 통솔할 수 있어야 한다.
* 무뚝뚝할지언정 감정을 과하게 표출해선 안된다.
* 말으로든 분위기든, 교사는 늘 학생들을 제압하고 서열 맨 꼭대기 층에 있어야 한다.   
* 언제든 학생들을 음소거시킬 수 있어야 한다.
* 약해 보이면 안 된다.

  물론 이런 모습도 분명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나 그와 별개로, 이런 모습이 옳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에게 온 걸까? 생각해 보았다.

  선배들에게서 전해 내려온 믿음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3월 첫날 교실에 들어갈 때는 문을 뻥 차고 들어가서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고. 3월 한 달 동안은 절대 웃어주지 말라고. 안 그러면 금세 애들은 기어오른다. 라는 말들을 대학생 시절에도, 현직 교사가 되어서도 선배들에게 듣곤 했다.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직접 쌓아 올린 믿음도 있었다. 저경력시절, 방학이 가까워지면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교실. 힘든 학생, 힘든 학부모와 함께 지내며 주고받은 상처와 소모. 우리 반 보다 뛰어난 듯한 다른 반.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며, 옳아, 지금까지 내 방식은 전부 틀렸어, 선배들 말씀이 옳군. 이제 내 모습은 전부 버리고 정반대의 내가 되어야지. 하는 믿음이 정답으로 귀결되었다.
그렇게 얻은 선배님들의 조언도, 내 스스로 얻은 교훈도 분명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었다.  

  아이고, 난 도무지 3월 2일 날 교실 문을 걷어차면서 등장할 수가 없었다. 저학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6학년들도 결국 꼬맹이들인데. 귀여운 것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압도적이고 차가운 교사가 되고자 했던 모든 행동들은 결국 나를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고.

  게다가, 불손한 말이지만, 선배님들도 완벽하진 않다. 내가 못하는 걸다 해내시는 선배님들도 결국 나 만큼 우리 반을 알진 못한다. 그들의 조언이 대개 도움이 되었지만, 때때로 우리 반에는 맞지 않는 조언도 있는 것이다. 우리 반의 전문가는 결국 나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반, 우리 학생들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해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불안한 마음에 무분별하게 쟁여두었던 믿음들. 그것들을 전부 잘게 해체하여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은 버리고, 내가 진심으로 믿는 것들만 믿음으로 남겨두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몇 년간의 시행착오, 타성, 불안함의 끝에서 나만의 대전제를 찾아냈다. 교실 안에서, 혹은 연구실 안에서, 학생과 학부모, 동료 선생님들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든, 나를 헷갈리지 않게 하는 단 하나 가장 굳은 믿음.

  친절함이 결국 이길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안성맞춤인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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