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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06.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10

친절함이 정말 이길까?

  친절함이라니. 말은 참 쉽고 예쁘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테다. INFP들은 이상적인 꽃밭만 꿈꾼다더니, 이 양반도 목 위로는 꽃만 가득 찼군! 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친절함은 받을 때는 좋지만, 정작 내가 하려면 주저하게 된다.

  학교에서 스물다섯 명 남짓한 학생들을 다 관찰하고, 쉬는 시간에는 다치는 애들이 없나 지켜보고, 다툰 애들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마음을 풀게 도와주고, 수업 도중에 급하게 오는 메신저, 업무 관련 공문, 동료 선생님과 함께 해야 하는 학년 업무, 평가 계획을 짜고 수시평가를 준비하는 일 등등, 교실에서 수업이야 당연히 해야 하고, 추가로 여러 업무가 겹겹이 쌓인 채로 다가온다.


  아이고, 이미 나는 오늘치 에너지가 텅 비었는데. 내가 최대로 해낼 수 있는 친절함은 간신히 미소 짓는 것뿐인데. 친절함이란 여유로운 자의 하사품 같고, 학교에서 나는 무언가를 줄 틈도 없이 바쁘고 소진되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달콤한 유혹이 찾아온다. 차갑고, 쌀쌀맞고,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알게 뭐냐. 학생이든,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나는 누구에게도 손해보지 않을 테다. 내가 물어뜯을지언정 뜯기지 않을 테다. 내 머릿속은 파충류의 그것과 비슷해져서, 세상에 따뜻한 경험이란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차가운 변온동물로 살겠다는 다짐을 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저는 차가운 도마뱀으로, 거리낌 없이 냉철한 교사로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이 나왔다면 나는 애초에 이 글을 쓰지도 못했겠지.

  친절한 교사로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불친절한 교사로 사는 것은 더욱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차갑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내 마음에 턱턱 부딪히는 과속방지턱을 마구 깔아 두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또 마냥 친절한 사람으로 살기엔 에너지도 모자라고, 손해 보는 기분이라 찜찜함을 버리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날은 친절하고, 어떤 날은 매정하고, 어떤 날은 이도저도 아닌 곤죽으로, 기준 없이 흐물대는 교사로 살아왔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변화의 필요성이, 어느 쪽이든 방향을 정해서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2021년 가을이었다. 나는 4년 차 초등교사였고, 3학년 학생들의 담임이었다. 그때 우리 반에는 J라는 남학생이 있었다. J는 언제나 목소리가 컸다. 수업 중에도 늘 큰소리로 씩씩하게 발표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교사의 말을 끊고서라도 쩌렁쩌렁하게 말했던 학생이었다. 친구가 기분 나쁘게 하면 쫓아가서 귀에 입을 갖다 대어 소리 지르고, 옆에 앉은 여학생의 반응이 궁금해서 지우개를 잘라 던지곤 했다. 다른 남학생이 실수를 하여 나와 상담하면 기쁜 표정으로 구경하러 오곤 했다. 나까지 포함해서 교실 맨 위, 서열 1위를 지키려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였다. 가장 힘든 아이였고, 나도 J의 어머니도 충분히 지쳤지만 '그래도 어린이니까' 하며 내일은 괜찮겠지,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J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귀로 들어와 버렸다.


"야, 선생님들은 다 거지야. 우리 반 선생님은 XX야, XX."


  가려둔 말은 욕설에 가까웠다. 나는 어떤 맥락으로 이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왜 그랬을까. 나는 분함과 의아함으로 J를 불러서 물었다. 네가 한 말을 들었는데, 너무 속상하다. 왜 그런 말을 했냐.


  J는 입을 다 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의 물음은 수차례 이어졌고, J는 입을 열지 않았다. 더 이상 이어갔다간 내가 부탁하는 꼴이 될 거 같아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됐다.라고만 말하고 끝냈다.


   그 후로 J를 볼 때마다 착잡했다. 저 자그만 10살 아이는 맥락 없이, 벼려낸 말로 나를 찌르고 베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것 봐주세요. 저 어린 3학년 소년에게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나는 178cm, 28세 건장한 남성입니다.라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열에 아홉은 푸하하, 웃지 않을까. 에이, 어린애들이 그렇지 뭐. 남자가 되어 갖고는. 하고 우스갯소리나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냥 넘겨버렸다. 나는 상처받지도 않았고, 꼬맹이들은 원래 그렇지. 하면서 안 아픈 척했다. 사실 꽤 아팠고, 힘들었다. 결국 나는 21년 마지막까지 J에게는 세상 가장 두꺼운 가면을 쓰고 진심 없는 미소로 끝인사를 했다. J의 어머니께서 종업식날 보내신 문자에도 거짓으로 답했다. 좋아하고 아끼는 학생이었다고.


  그래서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젠 정말 도저히 거짓말은 못하겠군. 제일 싫고 미웠던 학생을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적어도 J가 하나만큼은 확실히 가르쳐 줬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챈다. 이 사람은 단단하구나. 저 사람은 말랑하구나. 이 사람에겐 이런 말을 해도 내가 다칠 일은 없겠구나. 하는 감각. 어른이 되어서는 알면서도 자제하는 공격성을, 아이들은 자연스레 시험해 본다. 친구들의 선망 어린 눈빛을 얻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서열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그냥 그런 기질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J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 담임에게는 그래도 되니까.

  당시에는 분했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줏대 없이 흐물한 곤죽처럼 살아왔기에, J도 그걸 알았기에 한번 찔러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변해야 함을 느꼈다. 단단한 교사로.


  나는 두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 누구에게도 마음의 틈을 내어주지 않는 교사. J든 누구든 감히 살짝 건드릴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그런 교사가 되는 것.

  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교사. 친절하고 또 친절해서 다툴 의욕을 잃게 만드는 교사가 되는 것.


  어느 쪽도 쉽지가 않고, 어느 한쪽으로만 사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고, 후자의 방향으로 걸으며, 친절함이 결국 이기리라는 믿음으로, 5년차 첫 날을 맞았다.


(p.s. 혹여나 당신도 비슷하게 다친 적 있다면, 우선 당신의 잘못이나 책임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꼭 밝히고 싶다. 바뀌겠다는 선택은 나의 취향일 뿐, 어떤 선택을 하든, 혹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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