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되기 전까지, 그리고 교사가 되어서도 몇 년간. 나는 무해한 사람으로, 무해한 교사로 살고자 했다.
무해한 것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누구도 나뭇가지나 말랑한 젤리와 싸우려 들지 않는다. 나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데, 날을 세우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은 그 사실을 스스로 깨우쳤다.
나는 너무 일찍 나 자신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갈등을 싫어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에 재간이 없다.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조금 내어줄지언정, 누구와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꺼려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적거나 없더라도, 누군가와 다투게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사과할지언정 외나무다리에 서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나는 어려서부터 무해하게 보이려 애쓰며 보냈다. 학교에서 책을 읽고 시험을 잘 보고 하는 것들은 도움이 되었다. 같은 반 애들이 보기에, 나는 같이 겨루자니 너무 말랑해서 겨룰 보람이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껏 괴롭히기에는 꽤나 범생이었다. 서열 꼭대기의 학생들에게 나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용케도, 질풍노도의 동급생들 사이에서 큰 생채기 없이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었다. 적당히 운이 좋았고, 나 자신의 약점을 알고 빨리도 생존전략을 취득한 덕이었지 싶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비상 알람이 불쑥 울리곤 했다.
사람은 물건과는 다르다. 나는 나뭇가지나 말랑한 젤리와는 다른 것이다.
사람은 객체이기 이전에 늘 주체로 살 것을 먼저 요구받는다. 하지만 나는 객체로서 살기를 우선했다. 어려서부터 줄곧 갈등을 피한다는 목표를 먼저 추구하다 보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진정 싸우고 싶은 순간, 진심으로 화내야 할 마음을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라지며 위기를 겪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이 알람을 울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은 무시할 수 있다. 알람소리가 귀에 거슬려도, 귀마개를 꾹 눌러 끼고 잠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자주 울리고, 소리가 더욱 커져 귀가 찢어질 지경이라면, 결국 해야만 한다. 몸을 일으켜서 알람을 끄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알람이 최고조로 시끄러웠던 때가 J의 어머니에게 거짓말로 답장을 했던 바로 그때였다. 사실 당신의 아이는 힘들고 지치는 고행 그 자체였는데, J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해버린 그때. 안간힘을 써서 갈등을 피하려 했던 그 순간, 비로소 내 안의 '무해한 사람'은 백기를 들었다. 안 되겠다. 더 이상 이렇게 살다 간, 남들과의 갈등을 피하는 대신, 나 자신을 평생 미워하고 다투며 살겠구나.
이제 그만하자.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이제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자. 남들에게 무해한 사람으로 보일지 어떨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내가 친절함을 선택하자.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 모든 행동은 남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하겠다. 나의 건강한 삶을 위한, 새로운 생존전략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2022년 3월 2일, 5년 차 교사로서의 첫날을 새롭게 시작했다.
그날 새롭게 해낸 것은,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미소 짓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3월 첫 달은 웃지 않고, 차갑고 무뚝뚝한 담임으로 있었다. 교실의 분위기를 무섭게 잡아서, 시끄럽고 사고 치는 일이 없는 반을 만들고 싶었다. 한 번 무너진 반은,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동료 교사들의 빈축을 사고, '유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곁에서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남들에게 무해한 교사, 무해한 반을 만들고 싶어서 봄의 시작마다 그렇게 차가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3월에 미소 짓느냐, 찌푸리느냐는 크게 상관없었다. 3월에 안간힘을 써서 차갑고 무뚝뚝하게 지냈던 여러 해를 돌아보면, 결국 막판에는 그와 상관없이 다투고 혼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주 힘든 해에는, 이것이 교실인지 시장판인지 구별이 안되던 때도 있었다. 결국, '3월에는 차가워야 한다'는 것은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미신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했다. 처음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3월 첫 달을 따뜻하게 보냈다. 다 내 허리까지 밖에 안 오는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라서, 미소를 참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테다. 그래서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선택한 친절함을 마음껏 풀었다.
그렇게 보낸 2022년은, 놀랍게도 정말 편안하고 따뜻한 한 해였다. 물론 어린아이들인지라 서로 다투고 실수하는 일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꾸짖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충분히 지적한 뒤에는 쓰다듬거나 안아주었다. (여학생들에게는 말로만)
내가 선택한, 내가 원해서 표현한 친절함이었다. 남들에게 무해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그저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처음이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반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가 주체가 되어, 친절함을 선택한 결과는. 교사 생활 5년간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한 해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껏 교사의 한 해는 몸이나 마음이나 다치고 너덜너덜해져야 끝난다고 생각했었다. 실망하거나, 원망을 사거나, 상처를 주고받거나, 끝내는 서먹해지고 다치며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런 끝맺음도 있었다.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헤어지는 교실. 그런 교실도 있었다. 만들 수 있었다.
이제야 믿게 되었다. 남들에게 무해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내가 선택한 모습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