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야 Feb 19. 2023

예술은 마음의 비상식량

서울 여러 전시회를 다녀오고

전시회 관람이 취미가 된 이유로는, 나에게는, 허영의 마음도 조그맣게 숨어있었다.

  어릴 적 처음 봤던 이중섭의 '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빠져들어서 그저 쳐다보기만 했지만. 모든 전시회가 그렇지는 않았다. 유명한 화가든 처음 들어본 화가든, 그냥 가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어깨를 으쓱하게 되는 기분이 있었던 것이라. 으하하, 부끄럽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뽐내려고 시작한 취미가 점점 진짜 즐거움을 주곤 한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인상주의 화풍의 거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시대에 살았는데, 파란색을 유독 좋아하는 그의 그림에는 수많은 파랑이 나온다. 날카로운 파랑, 따스한 파랑, 유들유들한 파랑, 너무 가벼운 파랑 등등.

(촬영 금지 전시회라 눈으로만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사진을 못 찍는 전시회라 엽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또 그의 작품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피사체가 그의 아내 샹탈이다. 작품 옆에 연도를 유심히 살펴보니, 수십 년 동안이나 그의 아내는 꾸준히 그림 속에 등장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라, 이제는 낡고 오래되어 지난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사랑만큼은 낡고 오래될수록 더 소중하니까. 꼼짝없이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셋째 날에는 노리고 있던 이중섭 특별전 티켓을 마침내 현장에서 받을 수 있어서, 신이 나서 관람하고 왔다. 미술관 소장품과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이 함께 모인 전시였는데, 커다랗고 화려한 작품은 없었지만 유독 마음에 박힌 전시였다.

  

  이중섭도 아내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 사람이었다. 한데 아내는 일본 사람이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본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여 그는 그저 가족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곁에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 캔버스에 그리다가 종이에 그리다가 끝내는 은박지에, 그는 사랑과 외로움과 가족을 긁어모았다.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거기서도 발을 떼기가 참 힘들었다. 말도, 포옹도, 사랑도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것인데 그는 자신만의 최고의 방식으로 혼자 멀리서 사랑했다.



 다른 전시회들도 꽤 좋았다. 테헤란로에서 열린 폰타나 사진전(정말 그림같이 찍었다, 사실주의 작가들에겐 달갑지 않을 말일까?), 이중섭 특별전과 같은 곳에서 열린 현대미술전. 둘 다 눈이 호화로운 전시였다.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지만, 조금 아쉬운 듯 떠나야 다음이 더 기대되겠지. 살아서 이런 작품들을 만나고, 눈으로 온전히 볼 수 있어서, 정말 내 삶은 여러 행운이 겹친 결과구나,라고 생각했다. 행복했다.
 

  앞으로 살다 보면 지치는 일도, 마음이 무너지는 일도 종종 있겠지. 그럴 때면 이 기억들을 비상식량처럼 꺼내 먹자.

  잠깐 만난 예술이 평생의 삶을 살게 돕는다.

작가의 이전글 INFP 초등교사 생존기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