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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Feb 18. 2023

INFP 초등교사 생존기 12

이상적인 교실을 단숨에 만들 수는 없으니


그렇게 2022년 한 해는 친절함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보냈다. 나의 교직 생활 중 제일 마음 평온한 시기였다.


다만 수업 일수 191일이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란, 교실이란 그런 곳이니까. 여러 사람과 여러 감정이 쉴 새 없이 부딪히는 공간이다.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하여, 평소에도 차분하고 친절한 어조로 말하고 대하자. 라는 마음이었으나, 가끔은 친절함보다 더 우선인 것이 있었다.


친절함은 서비스업의 미덕이고, 1순위로 지킨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보다 더 우선인 것이 있다고? 지금 글을 읽는 당신은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학교, 교실에서 친절함보다, 사실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덕목, 목표.


나에게 있어 그것은, 안전이었다.


  교실 속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은 교직 1년 차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나의 규율이다. 이것만큼은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다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 3월 초에 학생들과 처음 만날 때에도, 그리고 언제나 수시로도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의 몸과 마음의 안전을 지켜주는 교실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하고.


  그래서 친절하고 나긋한 말투가 아니라, 다급하고 다그치는 말투도 가끔 나오곤 했다. 아이들이 복도나 교실에서 뛰어다니거나(물론 그 나이에 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서로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아 마음이 다치거나, 몸이든 마음이든 다칠 것 같은 위급한 순간에는 친절함보다는 빨리 위험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교실은 그렇게 자주 부딪히는 공간이니까. 이런 때만큼은 친절함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으로 친절함을 끝까지 유지하기 힘든 때도 있었다. 으하하...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는 보호자분이 계셨다. 필시 마음이 크게 상하신 것이지, 다만 그 마음 상함이 꽤 자주 있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처음 몇 번에는 친절하게 대응하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심술이 나서 마지막에는 전화를 끝~까지 안 받고 버틴 적이 있었다. 그렇게 18시부터 주기적으로 울린 전화는 새벽 2시 즈음까지 울리다가, 아침 출근 직전까지도 울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에이, 그냥 받고 끝낼걸. 하는 생각이지만, 그때는 심술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버티고 있었다. 흥, 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니까. 버틸 테다. 하는 생각으로.

  그래서 결국 보호자분께서는 다음날 직접 학교에 오셨다.

  다행히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노발대발하고 다투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바로 연구실로 보호자분을 모셨고, 그분의 속상한 마음, 나에 대한 조금의 원망, 바라는 점 등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윽, 심술도 조금만 부릴걸. 전화로 끝낼 수 있을 일을 크게 만들었구나. 그래서 다음부터는 그래도 한번 더 친절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친절함을 매번 발휘해 보겠다는 다짐과 달리 삐걱이는 과정이 꽤 있었다.     

  복도에서 우다다 달리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혼낸 적도 있었고, 괜히 심술을 부렸다가 보호자분을 더 속상하게 하여 결국엔 내가 더 죄송했던 일도 있었다. 아, 한결같기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하지만 그런 삐걱대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실을 순식간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수많은 아이들, 수많은 감정들이 오가는 교실에서는 정말 여러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끝난다. 변수 투성이인 이곳에서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만, 하나의 기준으로만 모든 일을 해 낼 수는 없는 것이리라.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친절함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하면 자유자재로 바뀌기도 하자.

  아이들이 몸이나 마음을 다칠 것 같으면 친절함을 잠깐 넣어두기도 하고, 보호자분이 나와 자주 이야기 하고 싶으시다면, 그러면 한번 더 친절하게 이야기 나누고, 그런 식으로.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지만, 한 가지 마음만 갖고 딱딱해져 버리면 그것도 나에게 힘든 일이니. 필요하면 부드럽되 지나치게 말랑해지지는 말자. 다소 애매하지만 이것이 내가 내린 중론이다.


  이렇게, 나의 초등교사 생존기는 (심적으로) 험난하고 복잡했다. 첫 해는 와장창 부딪히고 다쳤고, 둘째, 셋째 해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으며 과한 연기를 했고, 넷째 해에는 도저히 이렇게 나를 속이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펑 터졌다. 다섯째 해까지 채우고 나서야, 이제야 무언가 조금 알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온갖 학생들, 감정들, 사건이 넘쳐나는 교실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려면, 나침반이 하나 꼭 필요하다. 교실 속, 많은 갈등과 선택의 순간에, 내가 흔들림 없이 말하고 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준. 그 기준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앞으로도 나의 교직 생활에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지치는 때도 있을 테고, 어쩌면 마음이 와장창 깨져서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제 나는 미리 겁먹지 않고, 나의 나침반을 따라갈 뿐이다. 무슨 갈등이 생기든, 무슨 고민이든, 그래도 한 번만 더 친절해보자. 그렇게 선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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