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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Apr 07. 2023

남미에선 치차론을 기억하세요! -희망편

Cusco, Peru

한국을 떠나 남미에 발을 디딘지 약 2주. 이상하게도 여행길 위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 아닐까 싶을 만큼 더욱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다.

그만큼 내 일기장과 사진첩에도 2주분의 추억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아직 이거다! 싶은 맛 좋은 음식은 만나지 못해 나의 기록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

아, 실패한 음식의 기록은 일기장 속 짤막한 한줄평과 함께 짜디짠 별점을 주긴 했지만.


제일 처음 배낭을 쌀 때 언젠가의 비상사태, 그러니까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아 움직이지 못할 때라던가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을 도저히 찾지 못할 때에 먹기 위해 꼭꼭 숨겨둔 신라면 3봉지도 이미 거덜 난지 오래였다. 2주 동안 먹었던 최고의 음식을 꼽으라면 그 비상식량이었을 신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먹은 걸 얘기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여긴 어디? 바로 잉카의 심장, 쿠스코!

여짓 지나온 소도시와는 다르게 크고 화려한 광장도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이 모인 이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스치는 일도 많아졌다.

그 말인즉, 식당도 꽤나 많지 않겠는가. 드디어 이곳에서 남미 맛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대로 '쿠스코 음식'을 토독토독 검색해 보니 곧장 눈에 띄는 음식 몇 가지가 있었다.


1번. 꾸시꾸이, Kusikuy (기니피그 구이)

2번. 치차론 데 찬초, chicharrón de chancho (돼지고기 튀김)

3번. 아도보 데 찬초, Adobo de chancho (돼지고기 수프)


오…. 1번은 내가 아무리 비위가 강하다 해도 머리까지 튀겨져 나온 따끈따끈한 기니피그를 마주할 자신이 당장엔 없었다.

그렇다면 2번과 3번인데, 동행중이었던 언니가 찾아온 식당에서 운 좋게도 두 가지를 같이 팔고 있었다. 과연 내 남미 여행기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들뜬 마음으로 들어선 식당은 남미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패턴의 테이블보가 깔려있는 깔끔한 곳이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지만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웠던 식당 주인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맛집의 냄새가 난다…!

5분 즈음 기다렸을까, 제일 먼저 나온 이름 모를 생선 튀김. 나름 손이 큰 편인데 손바닥을 쫙 펴도 그것보단 컸으니 더욱 의문의 음식이 되었다. 그릇에 삐져나올 만큼 이렇게 큰 생선 튀김은 처음인지라…. 도대체 무슨 생선이었을까?


약간의 비린내야 그렇다 치고, 라임즙과 야채를 곁들인 생선 튀김의 맛은 꽤나 입맛을 당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인은 어딜 가나 뜨끈한 국물이 필요한 법. 여기에 흰쌀밥만 있었다면 한 그릇 뚝딱인데, 쩝. 비록 펄펄 끓는 뚝배기는 아니었지만 밑이 오목한 접시에 자칫하면 넘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담아져 나온 돼지고기 수프, 아도보 데 찬초(Adobo de chancho). 불그스름한 빛깔에 맛도 감자탕과 비슷하다고 하니 매운맛의 민족인 우리의 맘을 사뭇 설레게 했다.


그래서 맛은 어땠냐면…!

일단 한국의 감자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이다. 한국은 깊고 진한 감칠맛이 있다면, 남미는 더운 기후 탓인지 신맛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분명 국물을 먹고 있는데 왜 자꾸 침샘이 자극되는 거지요…? 조금 매운 시큼 새큼 수프 정도?


그래도 모두가 입 모아 소주 생각이 나지 않느냐며 얘기하는 걸 보니 이 정도면 남미식 감자탕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혀를 때리는 매운맛에 우리는 부지런히 그릇을 비워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돼지고기 튀김, 치차론 데 찬초(chicharrón de chancho)! 무엇보다도 이 치차론이 너무 궁금했다. 후기에서 말하길 족발을 튀긴 음식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나에게 족발이란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가 일주일에 2-3번 도장 깨기를 다닐 만큼 빠져있는 음식이기도 했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족발을 튀겨내기까지 한 특식이라니. 상상만 해도 맛있지 않겠는가! 기대가 안될 리 없었다. 그래서 제 별점은요…!


「 내 남미 생활 중 최고 맛있는 음식인 듯…. 와, 먹는 내내 웃음이 안 떠났다. 이건 혼자 와서라도 꼭 다시 먹어야 한다.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갈까? 돈만 있다면 한국에 치차론 가게를 차리고 싶다. 별 다섯 개 중 열 개를 드립니다.」 (3월 18일의 일기)


여행을 다녀온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남미에서 먹었던 제일 맛있는 음식'을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냉큼 얘기할 수 있다. 치차론이라고!


왜, 우리가 즐겨먹는 치맥(치킨+맥주) 있지 않은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 맥주 안주로 치차론이 딱인데.'

한국에서 치차론을 파는 곳이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세요. Por Favor(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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