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수영하는 직장인
월요일이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 주말의 달콤함에 잔뜩 빠져있다가도, 일요일 밤만 되면 사탕 뺏긴 아이처럼 땡깡 부리고 싶어진다. 아, 출근하기 싫어! 싫다고! 그래도 어떡하겠나. 나 하나 온전히 먹여살리기 위해서 돈벌이는 필수불가결한 일인 것을....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셀 수 없는 고진감래의 주말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닐런지. 눈물 젖은 축축한 베개에 머리를 뉘고 잠을 청한다. 그리고 빈다. 제발 꿈속에서 로또 번호 좀 알려주세요...!
출근한지 30분채 되지도 않았는데 직장인 친구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은 벌써부터 불티나게 가동 중이다. 메시지가 쭉쭉 쌓이는 속도를 보아하니 십중팔구 회사 욕일 테다. 그 재밌다는 아침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유일한 도파민, 바로 회사 욕 아니겠는가. 세상은 넓고, 직장은 좁은데 그 좁은 직장 내에서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친구 1: 월요일인 것도 좆같은데 아침부터 지랄이야
신랄한 육두문자를 보니 근래 본 영상 중 가장 공감되었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제 친구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걔가 직장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아요.”.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만난 친구 1은 최근 이직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온갖 트집을 잡아대는 상사 한 명 때문에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역시나 오늘도 친구 1의 분노 버튼을 누른 사람은 예의 그 상사였고, 트집을 잡는 예로는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친구 1: 사무직이 어떻게 키보드 치는 소리를 줄이라는 거니? 게다가 난 이미 무소음 키보드 쓰고 있다고!
친구 2: 그 인간 귀에 문제 있는 거 아니라니? 우리가 그 회사 쳐들어가서 공포의 쓴맛 한번 보여줘?
친구 3: 야. 이참에 우리 다 같이 사직서 내고 해외로 뜰래?
이럴 때야말로 '우리'라는 공동체를 더욱더 강조하는 친구들의 우정이 참으로 끈끈하다. 서로 회사 내 빌런을 물리쳐주자느니, 배낭여행의 낭만은 유럽이라느니, 차라리 우리가 회사를 차리자느니 너도나도 당장 사직서 쓸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막상 이야기의 끝은 싱겁다.
친구 1: 에휴. 그래도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지. 다들 일 수고해라.
친구 2,3: 에휴. 너도.
대개 이렇게라도 욱하던 마음을 털어내고 나면, 곧 폭발할 것 같던 활화산 상태의 친구도 잠시나마 휴강 상태를 맞아 휴화산이 된다. 언제 또 활화산이 될지 모르지만, 당장에는 이너피스를 외치며 마음속 평온을 찾았으리라.
한바탕 위로하고 나의 현 상황을 둘러보니 남 걱정할 처지가 못 됐다. 내일 아침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는 아직 손도 못 댄 채였고, 당장 몇 시간 뒤 들어가야 하는 회의에서 깨지지 않으려면 쏟아질 모든 질문에 대비한 업무 파악이 되어있어야만 한다. 지금부터 정신을 또렷이 차려야만 한다는 뜻이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업무에 이리저 뛰어다니며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야근은 겨우 면했지만, 모든 정신력을 탈곡기에 탈탈 털린 듯 기운이 쏙 빠진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저물어가는 해가 보인다. 이제야 한숨 돌릴 만한데, 하루가 다 가버렸다니! 어쩐지 무척 억울한 기분이다.
마음만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로 다이빙하고 싶다가도, 이대로 잠들면 그냥 흘려보낸 오늘에 허무함만 쌓일 터였다. 이런 날의 극약처방은 집에 있지 않다. 맛있는 음식도 소용없다. 6시 정각이 땡 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벗어나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곳은 나만의 오아시스, 바로 수영장이였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과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 교차하는 탓에, 운전하는 내내 속으로 고민한다.
'아, 그냥 집에 가서 쉴까?'
'아냐, 그래도 막상 다녀오면 상쾌하잖아.'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양가감정의 싸움은 결국 수영장으로 향하는 갈림길 위에서야 종료된다. 아직 수영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벌써 기특하다.
이내 물속에 몸을 담그자, 모든 망설임이 사라진다. 내 의지대로 휘젓는 팔과 다리. '음-' 하고 내뱉고, '파-' 하며 들이마시는 숨소리.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유연한 감각. 길게 이어진 25m의 레인 위에서 나는 한없이 자유롭다. 헤엄칠 때야말로 비로소, 미처 빼앗길 뻔한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로 되찾았음을 실감한다. 내 몸이 내 것이라는, 아주 선명한 느낌과 함께!
뜨끈한 물로 노곤노곤하게 샤워하고 나온 뒤, 얼마 전 코끝에 스친 향에 이끌려 충동구매를 했던 바디로션을 건조해진 몸에 잔뜩 펴바른다. 기분 좋은 향기를 폴폴 풍긴 채로 드디어 포근한 침대에 눕는다. 나른하고 몽롱한 상태의 잠들기 직전에야 마침내 깨닫는다. 한 톨의 미련도 없이 오늘을 보내줄 준비가 되었음을.
하루의 주도권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는 내일도 오후 6시가 되면 외칠 것이다.
먼저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