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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숙 Feb 17.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심지어 영화의 시대 정보조차 없이 관람한 영화였다.



초반에 느릿한 호흡의 전개와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이 마치 고전 소설의 문장을 천천히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화면에 등장하며 나타나는 또렷한 눈동자와 고집이 스며있는 눈매, 입매 그리고 처음 외출을 하며 절벽 위를 내달리는 엘로이즈의 묘사는 순간순간 내 안에서 문장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던 중 자연스레 ‘아, 이건 여성 감독이 만들었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요 몇 년 평가를 좋게 받은 캐럴, 아가씨들 같은 여성 퀴어무비가 몇 개 있지만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혹은 더 잘 다룰 수 있는 여성 서사의 결이 있다는 걸 정확히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예전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느낌이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구나 싶어 내심작 충족감이 생기기도 했다.


+

피사체를 관찰하는 마리안느의 시선과 마리안느를 바라보는 엘로이즈의 시선이 얽히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둘의 눈동자에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되었다.
자신의 거취와 삶에 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음에 속으로 분노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비타협적인 모델인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첫 번째 초상화를 거부하고 단순 모델을 넘어서 자신의 초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사이에서의 화가와 모델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변화가, 점점 화폭을 채움에 따라 조용히 이별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초상화와 함께 아련하게 펼쳐진다.
오르페우스의 암시와 함께 주인공 둘도, 나도 알고 있는 피하지 못하는 작별로 조용하지만 폭발적이었던 순간의 사랑이 영원 속에 갇혀 추억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출품할 수밖에 없는 여성화가 마리안느와 정해진 대로 결혼을 한 후 책 한 페이지에 몰래 남겨진 사랑의 추억을 계속 기억밖에 할 수 없는 엘로이즈.
영화 처음 유배지 마냥 갇혀진 섬과 집에서 바다를 향해 내달리던 엘로이즈의 눈빛이 마음에 남아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영화의 결말에 마음 한 곳이 아린 영화다.

결국 사회적 제약과 함께 사랑으로도 구원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 없어질 두 사람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애절함 따위 일도 없는 산뜻한 해피엔딩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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