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응어리진 마음의 실타래를 풀수 있을까. 과장된 스트레스가 과장된 목표가 과장된 인내가 과장된 꿈이 나를 일상 밖보다 더 먼 곳으로 날려버린 것일까.
뽀글뽀글 끓어 오르는 마녀의 솥단지에는 갖은 이유가 달린 양념들이 들어가 있다. 푸른 죽같은 지친 열정에는 꼭 찝어 낼 수 없는 원인들이 껌처럼 질척거린다.
2년 동안 나는 산업혁명기의 중세노동자처럼 일했다. 화장품 공장의 포장일은 내 생애 가장 힘든 우울감들을 털어내는데 좋은 치료법이었다.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컨베어벨트 위의 화장품들을 포장하는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상처들을 잊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듯 기계같은 손놀림은 내 육체를 학대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정신만은 치유받는 느낌이었다ᆢ
그래서 식당 밖 대추나무에 대추가 두 번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힘든 육체노동과 심성이 고약해진 인간들 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잘 참는 듯했다. 나 역시 서서히 심성이 고약해지고 싶어 할 쯤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가장 더러운 덕목 중의 하나는 언어구타일것이다. 없는자들끼리의 무시와 투쟁과 질투 ᆢ배려없음ᆢ기타등등을 원숭이처럼 끼끼라고 높낮이를 내는것이 아니라 절묘하고 간교하게 감정을 들 쑤셔서 인내를 바닥까지 끌어내는 말ᆞ말ᆞ말
나는 번아웃했다. 이후 직장을 그만둔 후 그 직장에서의 기억들을 씻어내려고 애쓰고 있지만 귀신 그림자처럼 기억이 따라다닌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경지에 지금 와 있다. 현재 나의 가장 큰 위로의 동료는 침대와 리모콘이다. 하지만 나의 초조감은 여전하다. 먹고 살아야한다는 인생 비정규직의 두려움 ᆢ그리고 나이 역시 막 비정규직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