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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Feb 13. 2016

공애정

2. 기억의 파편

 참 이상하다. 15년 이상 살아온 동네의 풍경과 골목길과 언덕을 오르는 느낌과 어떤 향기와 소리들이 말간 시냇물 한 귀퉁이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나뭇잎처럼 떠오른다.  기억의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작은 시냇물 소용돌이에서 뱅뱅 도는 것일까 ᆢ 나뭇잎을 집어들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나뭇잎을 물에서 건져 내지 못하고 그냥 뱅뱅 도는 것을 지켜 볼 뿐이다. 나뭇잎이 돌면서 나를 꼼짝 못하도록 최면이라도 거는 것 같다.

 어제부터 축축 떨어지는 빗소리를 오늘도 듣는다. 하늘이 흐려서 블라인더를 올렸다. 그래도 거실은 흐리다. 후즐근하게 침대에 누워 잠만 자던 언니는 명절 이후 다시 팔팔해져 서울로 갔다. 나의 언니 이름은 공애자다. 애자언니ᆢ애자야ᆢ이렇게 많이 불렀다고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와 나는 두 살 터울이라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기억이 안나서 언니를 부를때 굉장히 조심스럽게  부른다. 처음에는 애자라는 이름을 빼고 그냥 언니라고만 불렀다. 최근 들어서 나는  애자언니라고 부른다 그래야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ᆢ

 애자언니는 눈쌍꺼풀이 없는데도 눈이 애니메이션 주인공 뮬란처럼 매력적이다.애자언니의 직업은 헤어디자이너이면서 서울 강남에서 예약제 1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실력은 좋은지 벌이가 나쁘지 않은것 같다. 언니는 스물 여섯에 남자랑 동거를 하고 3년 뒤 헤어진 후로 결혼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나는 두 분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았다.사진속에는네 살쯤된 공애정이 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다.  아빠와 엄마는 삼십대 초반으로 젊어 보였고 두 사람은 웃지 않고  돌부처처럼 딱딱한 포즈다. 애자언니는 부모님에 대한 그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나야 기억이 없으니 딱히 질문도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ᆢ하나만 물어봤다.

ㅡ애자언니ᆢ엄마 아빠는 애정이를 많이 사랑 했어?

ㅡᆢ사랑ᆢ했겠지ᆢ그러니까 애정이 애자라는 이름을 지어줬겠지? 안그래?

나는 그냥 고개만 밋밋하게 끄덕였다.

기억이 없다는게 이래서 참 슬프다. 감정을 기억할수가 없다. 좋았다든가 나빴다든가 그 어느 것이라도 기억해 낸다면 나는 떠올리면서 그것에 대한 반응을 보일수 있을 것이다. 좋았다면 기분좋은 미소라도 지었을테고 나빴다면 인상을 구겼겠지. 나는  반응이 없어 무덤덤한 표정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여자가 아닌것 같다. 마네킹인형 같다. 표정이 없다. 이런게 나를 슬프게 한다. 슬픈 표정만이 점점 굳어진다.

  애자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바쁘면 삼 주에 한 번  내가 살고 있는 충주에 온다. 언니는 같이 서울에서 살자고 했지만 나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충주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언니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ㅡ그래ᆢ너는 충주가 편할 거야 예전에도 그랬으니까ᆢ그림을 다시 그려봐 네 손의  감각들이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을테니까ᆢ하지만ᆢ 애정아ᆢ너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지마 ᆢ난ᆢ그냥ᆢ이대로가 좋구나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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