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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Feb 13. 2016

공애정

4.나의 이름은 이름

나에게 남자가 있었다. 도어록을 부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공애정이라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생경한 남자. 나는 두렵고도 기분좋은 호기심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ㅡ누구시죠?  애정이를 아세요?

ㅡ아,예

ㅡ여기 도어록 열 수 있어요?

언니가 대뜸 남자에게 물었다.

ㅡ아. 예.

ㅡ음ᆢ비밀번호를 애정이가 알려주는 사이라 이거죠?

남자는 언니의 말에 멈칫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눈짓을 보내며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ᆢ누구ᆢ?

나는 남자가 처음에는 두렵고 생경했지만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일 때는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언니ᆢ

나는 남자에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의 손은 빠르게 도어록의 번호를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고 언니와 나는 거실에 서서 멀뚱이 남자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에서 라면 과 소주를 꺼내 라면은 싱크대 위 찬장에 보관하고 소주를 식탁 벽면 귀퉁이에 세웠다.

이 모든 일련의 행동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언니와 나는  남자의 메뉴얼대로 움직였다.

ㅡ누님, 커피 드시겠어요? 친구분두요?


언니는 커피잔을 들고 몸의 냉기를 털어냈다.

ㅡ난 애정이 친언니인데 우리 애정이랑은 어떤 사이에요?

ㅡ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름은 최정우입니다. 그림동화 시리즈를 구상중인데 같이 작업할까해서 애정이를 찾아왔습니다. 연락도 안되고해서 직접 보려구요. 작업할 때는 서로 연락을 안하는 편이라 혹시나 했는데 와보니 집에 없더군요. 안그래도 걱정이돼서 어떻게 하나 심란했던 차였습니다. 아. 그런데 애정이는 어디있는 겁니까?

 남자는 눈앞에 나라는 공애정이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공애정이가 바로 나야 

나의 마음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입술은 조개처럼 더욱 다물어졌다.달라진 얼굴을 공애정이라고 알기에는 역부족이겠지. 나는 답답한 눈빛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애자언니를 바라 보았다. 문득 언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언니는 씽긋  나에게 장난기 어린 눈빛을 쐈다.

ㅡ실은 애정이가 급하게 호주를 갔어요. 남자 친구가 생겨서 같이 공부한다고 그러는데 말리지는 못하겠고. 동화작가모임에서 알게된  이 친구에게 집을 빌려줬어요.


언니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술술 만들어냈다.

나는 차라리 그게 나을 듯 싶어서 그냥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ㅡ어ᆢ어쩌지 그림동화시리즈를 같이 구상해야하는데ᆢ난감하네ᆢ어떻게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어ᆢ하ᆢ짜식도 사랑앞에서는 의리도 날리는건가ᆢ누님, 제가 섭섭해도 축하해줘야겠죠?

ㅡ그렇죠 내 동생이 연애하는 거 봤어요?아주 잘 된거에요. 짝사랑만 하다가 심장이 다 망가진 앤데 ᆢ

ㅡ그렇긴 하지만ᆢ 연애엔 도통 관심을 안보이는것 같았는데ᆢ참ᆢ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어ᆢ

남자는 끝말을 흐렸다.

나는 언니와 남자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ㅡ이 친구 어때요? 그림도 잘 그리고 아마 정우씨 그림동화시리즈 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걸요.

남자는 나를 꾹 누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ㅡ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그림과 글을 봐야하는데요. 이번 그림동화 시리즈는 이야기 작가와 그림이 동일하게  가야합니다.

그림동화를 해보신적이ᆢ

ㅡ해본적이 없ᆢ

ㅡ아유. 일단 한 개라도 맡겨봐요. 실력을 보믄 알잖아요

 언니는 졸지에 나와 남자를 농락하는 사기 브러커가 되어가고 있었다.

ㅡ그런데ᆢ친구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ᆢ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머리가 텅비는 느낌이었다. 이름? 이름?

ㅡ이

나도 모르게 이름이라는 단어를  진지한 톤으로 말했다.

ㅡ이름이 이름이라고요?

나는 얼굴이 벌개졌다.

언니는까륵 웃으며 박수를 쳤다.

ㅡ그렇죠. 이름이 름이래요. 특이하죠?

나는 언니가 귀까지 빨개져서 웃음을 참는 것을 보았다.

ㅡ독특한데요ᆢ름ᆢ무슨 뜻이죠?

나는 선생님 질문에 답변 못하는 학생처럼 꾸물거렸다.

ㅡ늠늠하게 자라다오 인가?

다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내가 바로 공애정이라고 말하는것도 늦어버렸다. 이것은 내가 기억을 잃어버린 탓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후로 현실 대체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 일 것이다. 예와 아니오를 제 때 말하지 못하는  자꾸 어눌해지는 나ᆢ

애자 언니가 조금 미워졌다. 나를 자꾸 더욱 미궁속으로 빠뜨리는 기분이든다. 애자언니. 왜 그래ᆢ나를 더욱 못찾게 만들어ᆢ

 애자언니는 친화력이 뛰어났다. 남자와 라면을 끓여먹는가 싶더니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남자는 그날 밤 모텔에 가서 잠을 잤고 애자언니는 다음 날 멀쩡히 일어나 씩씩하게 차를 몰고 서울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조용한 일상에 날개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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