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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Feb 17. 2016

공애정

6.손이 그리는 그림

 아침 햇살이 물러간 뒤, 오후가 되자 눈발이 날렸다. 춥다는 이유로 창문을 열지 않은 지 삼일 째다. 나는 기존에 있던 핸드폰을 정지 시키고 새 핸드폰을 개통시켰다. 두 개의 핸드폰이 필요할 거 다.

기존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리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카톡의 목록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최정우와 애자언니 두 사람 뿐이다.

 언니는 서울로 올라 간 이후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언니가 한 번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언니의 목소리 톤이 뇌를 자극했다.

 평온한 마음에 돌멩이가 던져진 기분이랄까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라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애자언니가 알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최정우.  그 남자에게도 전화가 왔다. 일러스트 포트폴리오를 보자고 했다. 컴퓨터 파일로 그림을 올려달라고 했지만,당분간 페인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려울 거 같다. 기억이 멍할 뿐 무엇을 어떻게 툴을 다룰지 막막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내 공간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커피를 마시고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문득 손가락이 식탁 유리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즉시 종이를 꺼내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다.  아니, 그것은 낙서였다.

 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면서 종이에 편한 마음으로 그림 낙서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람,토끼,원숭이, 나무, 꽃, 사과ᆢ손이 가는대로 그냥 그렸다.

 어쩌면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손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그리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손이 따라가는 대로 그렸을 뿐이다.

 나는 한 남자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원을 그렸던 거 같다. 원을 검게 채우면서 깊은 눈동자를 그렸고 눈동자는 두 개의 눈모양으로 완성되고 이어 눈썹과 코를 그렸다. 입술을 그리고 나자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여 얼굴선과 머리카락을 단숨에 그려냈다. 목선을 그리고 나서야  겨우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들뜬 기분 탓인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완성된 남자의 얼굴은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잘 생겼다. 손은 나의 이상형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손이 기억하는 누군가를 그린 것일까?

 실존하는 남자는 아닐 것이다.

 노트북에  암호가 걸린ㅡ그ㅡ라는 한글 파일이 있다. 나에게 ㅡ그ㅡ는 누구일까?

암호를 알 수 없어서 그 글을 열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검은 가방 안에서 발견한 일기장으로 나는 한 남자를 알아 낼 수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케이 였다. 케이가 그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일기장은 공애정이 스물 두살 때부터 2년 간 쓰여진 것이다.

 매일 매일 쓴 것도 있고 한두 달 훌건너 뛴 것도 있었다.

 그 일기장이 공애정,

 바로 내가 쓴 것이 맞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긴하지만 그것은 내가 쓴 글이었고 믿어줘야 할 과거의  일부분이었다.

과거를 인정하고 믿어줘야 현재의 나를 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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