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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Feb 25. 2016

공애정

7.  스물두 살의 일기장

1990년 7월 13일 금요일
 나에게 있어 일기장을 새로 구입해서 첫 장을 어떠어떠한 사연으로 장식하는 것은 크게 감탄스러울만한 것은 못된다. 실로 1년 반이 넘도록 새롭고 신선한 기대감으로 일기를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모든 자잘한 행위들-시를 쓴다든가, 섬세한 일상의 메모와 에세이 감수성, 기록.. 등등-이러한 행위를 갑작스레 멈추듯 접어두고서 이리저리 알 수 없는 현실의 실 끝을 쫓아 오늘까지 왔다. 아마도 어느 일기 한 부위에 “여자는 돈을 벌기로 했다”에서 일지도 모른다.
 가슴속에는 열아홉 살 적 보다 덜 따듯하고 덜 놀라고 덜 감탄하고 더  차갑고... 아무튼 빈 어항 속에 떠도는 공기 같다고나 할까.
 오늘도 예외 없이 무언가 깨어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지냈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귀 같은 마음, 난 뭔가 달라져 있었다.
7월, 오늘은 새로워지고 싶다.
 마음은 연한 사랑을 가져보고 싶다. 꿈을  가진 여자가 간절히 되어 보고 싶다.
 이젠 노래로 그칠 것이 아니라, 되어보는 실습을 해보라고
 그럴 시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플라타너스 주위를 혼자 서성이는 바람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져보아.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너는 지금까지 무던히 그런 마음을 죽여 왔어. 이제 너를  살려보아..
 넌 소녀가 아니라 여자라고..
 온실의 꽃을 하이드 벌판에 놓아두고 마치 잘 자 하는 캐서린의 혼령 같은 내 모습.
 사람이란 것은 현실 즉 돈 버는데 뛰어난 사람과 비현실 -꿈, 시, 그림 등 창조의 세계-에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두 가지를 병행하는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해야 되나..
 나는 광명의 3층 빌라 지하방에 살고 있다. 케이는 나의 애인이자 비공식적인 남편이다.
지하의 습기가 몸에 배어 익숙해지고 나의 옷과 그의 옷 어느 것에도 습기가 달라붙어 있다. 습기가  체질화 되어간다. 습기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소수 방랑자들에 의해 내 다리는 공격당한다. 이 글을 쓰는  상 앞에 잉크병이 있지만 잉크 냄새보다 습기 냄새가 더 코를 찌른다.
 상쾌한 바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상의  큰 창문이 그립다.

왜 지하방들의 창문은 동화 속에 나오는 두더지 집 창문처럼 작은 것일까.  밖에서 작은 창으로 지하방을 들여다보면 안이 잘 보인다. 높은 곳에서의 시선은 낮은 곳에서 볼 때 침범이다.
 나는 소수 방랑자(바퀴벌레) 한 놈을 압사시키고 “대방광불 화염경”이라고 중얼거린다. 내가 어떤 놈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놈이 날 위해서 진심으로 “대방광불 화엄경”이라고 한다면 나는 놈을 용서할 수 있을까?
지하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습기 그리고 가난, 바퀴벌레, 하수구 냄새다.
싫은 것은 역시 싫은 것이다.
     
빌라의 정문 하나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위로 향하는 계단을 딛고, 어떤 사람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딛는다. 본능인지 몰라도 아래로 향하는 계단은 ‘추락’ 같다.
아득한 현기증으로 눈은 항상 아래로 쏠린다. 계단을 헤아리며 내려가 보니 13개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한쪽 벽면에 허름한 문이 있고 그 문을 열자 바로 부엌이다. 부엌의 모든 물건들에 습기가 배어 있고 약간씩 제 모습보다 부어있다.  좁은 부엌은 어둠 덩어리로 내 눈에서 점차 풀리면서 명도를 가진 어둠으로 점차 엷어진다.
 나도 모르게 근육을 오그린다. 어깨를 움츠린다. 갑작스러운 소수 방랑자들의 마주침을 극소화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낭만적인 사랑과 상상을 해내기 위해 나는 거짓말을 많이 내 머리에  세뇌시켜야 한다. 시끄러운 망치 소리를 아름다운 실로폰 소리로 상상한다든가. 난 도저히 그것이 잘 안되지만 화내지 않고 이렇게 산다는 게 쉽지 않지만 나는 잘 견디고 있다.
-위 보고 살자-
이 일기를 쓰는 이유도 망치 소리를 실로폰으로 세뇌하려는 나의 첫 번째 상상력 아이디어다. 견딜 수 없을 때는 견딜 수 있는 상상력으로... 세뇌하기...

 허름한 남색 일기장 겉면에는 한문으로 아가 금박으로 인쇄되어 있다.
스물두 살의 나는 여전히 나를 찾고 있었다. 작고 허름한 지하방에서 나는 케이라는 남자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일기가  쓰여진 년도였다.
1990년에 내가  스물두 살이면 지금 내가 몇 살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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