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몽 Sep 12. 2016

미래를 여는 신패러다임

증산도 도전에서 찾다

나는 삼국지를 공부삼아 본적이 있다. 난세의 영웅들이 미래를 열기위해 활거하는 장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할 때의 장면은 비장한 그들의 각오와 더불어 배경이 되는 복숭아 꽃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천하를 통일하여 만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대의를 세우고 그들은 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그들 역시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조조 밑에서 조조의 발바닥이되고 조조가 말을 탈 수 있도록 조조에게 등을 굽혔던 사마의가 삼국통일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이미 운수의 분수는 정해져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기타 등등의 여러 의기로운 인물들이 헛되이 죽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들대로 최선을 다해 살다 간 것이다. 그들이 이룬 결과물은 시간속에서 무한 변동된다.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면면히 회자되는 그들의 큰 뜻과 의로운 정신일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가진 존재다. 그것은 언제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유한성의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부서지기 쉬운 육체속에 영혼이라는 것이 담겨있다.

 영혼은  의지이며 뜻이다. 그 뜻과 의지대로 인간은 살다가는 것이다. 인간이 타고난 사주팔자의 시간과 공간이 고유성으로 주어지고 그것이 하늘의 명이고 살아내고  가야할 필연성이라고 한다.

 고유한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의 역활을 하는 우리는 나름의 가치와 뜻으로 살아가고 있다.

의지의 노력과 선택은 스스로 몫이다. 하지만 큰 물줄기에 작은 물줄기는 묻히고 마는 법이다.

선택의 여부를 떠나 쓰나미가 몰려오면  밥그릇도 내던지고 달아나야 할 판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의미는 자신이 가진 의지의 역량과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 파동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순리를 거스르면 자연은 가차없이 소멸시켜 버린다.

순리를 따르면 면면히 그 대세의 물 줄기와 하나가 되어 흘러간다.

 증산도와 인연이 되어 그 도를 접해 그. 물줄기를 따라 온지도 10년이 넘었다.

나는 강산이 변하는 걸 지켜보면서 도전속 비밀들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언서보다 더 구체적인 미래의 패러다임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현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사마의가 마상에서 득천하한 그 오묘한 천리를 살짝 엿보는것 같다.

 삼국지의 핵심 대의는 통일이다. 분열되어 혼란한 것을 통일로 안정 시키는 것이다.

 하나로 통일 한다는 대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우리는 통일 하려하는가.

그것은 분열되고 다투는 것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다.

분열되어서는 올바른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롭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상은 이미 대한민국 안에 열매의 형태로 꽃을 떨군 자리에 움지고 있다. 화려한 꽃이 떨어진 자리에 통일의 열매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대의를 논한 명분과 출사표를 보았지만 대한민국 증산도 만큼 큰 대의는 역사이래로 들어본적이 없다.

증산도는  분열된 대한을 통일 하고자하는 패러다임도 있지만 세계통일의 패러다임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다른 곳에서도 있다.

하지만 우주 통일을 이루겠다고 논하는 그 어떤 대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우주통일일가

우주를 통일하여 한 가족 같이 하겠다는 뜻과 패러다임은 차마 입에 담기에 황당무개할 정도다.

하지만 통큰 대의다. 통큰 뜻이다.

한 세상 살면서 그런 큰 뜻을 품고 죽는다해도 한이 남지는 않을것 같다.  

인생은 뜻을 얻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뜻도 얻지 못하고 품지도 못하고 송사리떼처럼 먹고 사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도

 위대한 존재다.

먹고 똥싸는 비루한 인간이 품는 신패러다임은

그대로 현실화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로다임을 열고 싶은 인간은 반드시 증산도의 도전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증산은 미륵의 도이며 미륵은 미래를 여는 것이다.

현재의 어둠을 터널안이라고 한다면 터널 밖의 밝음을 미래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큰 뜻을 품고 한 발자욱 신중한 발걸음을 떼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떠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