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몽 Sep 13. 2016

지진

증산도 도전에서 찾다

2016년 올 해도 어김없이 지진이 또 일어났다. 뉴스에서 다른 나라의 지진 소식에 어느덧 익숙해짐 마저 느낀다.

올 게 또 왔구나 또 오겠구나

증산도 도전을 알기전에는 절대 할 수 없었던 말일 것이다.

개벽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두려움이었다.

종말과는 다른 느낌이다. 종말은 부정적 질서의 끝이라면 개벽은 긍정적 질서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에 의미가 있었다.

마칠 종과 열 개의 의미가 다르다.

변화를 읽는 관점을 부정적 관점으로 읽는가

긍정적 관점으로 읽느냐의 차이다.


어제는 태어나 처음으로 지진을 경험했다. 경주5.1지진 지진의 여진이 충청도 충주에서도 느낀 것이다.

나는 식탁에서 이어폰을 하고 유트브강의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내 몸이 내 몸 아닌 진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 진동은 스스로 몸을 흔들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떨림이었다. 세포 하나 하나가 흔들렸다고 느꼈다. 스스로 내재된 에너지가 작동하는 진동같았다. 장난감 로버트의. 오작동 떨림이랄까

나는 잠시 혼동이 왔다. 도공할 때 자체진동을 느낄 때의 흔들림과 유사해서 혹시 자발도공이 되었나 생각했다. 집중하면 때때로 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의자를 재빨리 미세하게 흔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보니 선풍기 날개가 미세 떨리고 스위치  잡아당기는 줄이 바람도 안부는데 흔들 거렸다.

방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놀던 아들이 급하게 소리쳤다.

엄마 ㅡ

나는 아들에게 달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ㅡ너도 느꼈냐? 나도 느꼈다. 지진 아니냐?

빨리 검색해봐라

나의 말투는 말을 더 할 수록 빨라졌다.

ㅡ엄마 와이파이가 안돼요!  

그러더니 전화를 여기저기에 걸어댔다.

나역시 아는 지인들에게 아들만큼이나 걱정을 담아 전화를 했다.

친구는 직장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못느꼈다고 했다.

욕실에서 머리를 감던 딸이 수건에 머리를 훔치며 나왔다.

ㅡ엄마 지진났다고?

ㅡ움직이면 잘 못느끼나보구나

나는 그렇게 말했다.

티비에서의 뉴스 지진속보가 계속  나오고  제보영상도 나왔다. 제보동영상은 두 세가지다.

위급한 상황에서 동영상을 켜고 찍는 행동은 참 대단하다.

왜냐면 막상 때를 당하면 나는 아무 생각이 안나고 그냥 뭐야 뭐야 하면서 사태파악을 하기에 급했던 것이다.

보통 다 그럴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누가 동영상 찍을 엄두를 내겠는가

아들은 뉴스를 들으며 급기야 흥분해서 소리쳤다.

ㅡ엄마,엄마, 나 아직 살날이 창창하다구요 지진같은 거 나서 빨리 죽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살날이 창창하다구요 더 살아야해요!

 아들이 진지하고 절박하게 부르짖기에 속으로 웃어야했다.

앞으로 더 큰 여진이 온다는 기상청 속보가 뉴스라인으로 빨갛게 떴지만 우리는 밖으로 대피하지 않았다.

나는 이쯤으로 그칠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또 다시 흔들림을 느꼈다.

처음보다 강도가 있었다. 딸과 나는 서로 흔들리는 선풍기 날개를 주시했다.

ㅡ엄마, 지갑이라도 챙겨야겠어

그리고 방안에 있던 아들은 더욱 흥분해서 소리쳤다.

ㅡ아우씨 또 왔어. 누나 내 말 맞잖아 지진이 왔다구

아우 난 살날이 창창하다고

ㅡ아들아, 너 너무 흥분하는 거 같구나 진정해라!


나는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지진소식에 안타움을 느꼈지만 먼 나라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그들의 공포와 괴로움을 내가 느낀듯이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증산도 도전에는 개벽의 징조와 지축의 변화가 가까워 왔음을

지진과 뇌성으로 표징하리라는 구절이 있다.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기상이변은 이제 일상적 뉴스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둔감해졌다.그래서? 뭐 ?

살던가 죽던가 하겠지

그랬다. 안전불감증은 범람하지만 대책은 없었다.

어떻게 전부 뜯어고쳐?

방법이 뭔데 고층에서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핸드폰은 불통되고 건물 밖으로 나와야하는데 강도가 높은 지진이였다면 몸 추스리는 시간도 없다. 그냥 아자차 하는 순간에 건물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고층에서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는 건 시간이 있고 상황이 될 때나 가능하다.

동시다발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도 그때는 달려 갈 수 도 올 수도 없기에 내 자식이라도 살릴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없다는 거다.

그래서인가 ㅡ

내 자식이라도 손 잡아 끌 시간이 없다.

내 자식이라도 복이 있어야 산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불개벽은 일본에서 날 것이요,
물개벽은 서양에서 날 것이라.

이제 지진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겪는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접목운

대변환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ㆍ











작가의 이전글 미래를 여는 신패러다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