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도심 속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 들르는 곳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내외로 닿을 수 있는 대형 서점이 여러 곳에 위치한다. 그곳에는 없는게 없다. 광화문 교보문고만 보더라도 눈을 사로잡는 전자기기부터 수백가지 문구류까지 책 외에 눈돌릴 곳이 수두루빽빽이다. 오로지 책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그곳을 들를때마다 책은 뒷전이고 오만가지 펜들을 테스트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책의 위치를 찾기위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위치가 표시된 길쭉한 종이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쏘다니면 반짝 책이 눈에 띈다. 찾았다 내 책. 북적거리는 주변 소음 속 오롯이 책을 보려 자세를 잡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책'을 위한 공간 맞지?"라는 의문을 품은 채.
내가 학생이었을때만해도 문제집이나 책을 사기 위해선 동네 책방을 들러야했고 그곳은 꽤나 흥했다.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 지극히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곳이었다. 나는 책 보다는 필요한 문제집을 구입하기 위해 종종 방문했지만 상쾌한 눅눅함이랄까. 묘사하기 어렵지만 작은 책방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냄새를 좋아해서 종종 들러 구경하곤 했다.
종달리에 위치하 소심한 책방 외관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공간만의 냄새가 있다. 나는 그런 냄새를 가진 서점들이 줄어드는 것에대해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 '독립 서점'은 예전의 책방의 냄새를 간직하면서도 각각 서점 주인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그 냄새를 풍긴 곳이 제주도의 한 독립 서점이었다. 진녹색의 풀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낮은 하늘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 드르륵- 예전 동네 구멍가게에서 볼법한 미닫이 문을 조심히 열어보니 오직 '책'만을 위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내 정수리로부터 높지 않은 천장, 몇 십걸음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크기, 책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어울려 있는 각종 굿즈들, 컴퓨터로 서가의 위치를 검색하지 않아도 손을 내밀면 닿을 곳들에 책들이 위치해 있었다. 서점 주인의 애정이 묻어나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나는 그리웠던 냄새를 맡았다. 온전한 서점을 보게 된 것이다.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도록 장치된 환경들에 감사하면서 그간 그리웠던 공간과 냄새를 한 가득 품에 안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으며 평소 생활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내가 사는 곳에선 이런 품을 간직한 곳이 몇 곳 없었기 때문에 만끽과 동시에 벌써부터 그리워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독립서점은 '없는 게 없는' 대형서점의 장점을 닮진 못한다. 갑자기 갖고 싶었던 전자기기를 테스트해볼 수도, 문구류에 한해 작은 사치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찾고 있던 책이 없을 수도 있다. 몇 평 남짓 공간에서 수많은 책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 하기에 재고 있는 책의 한해서 손길이 가는 것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없는 게 더 좋다. 뭐가 없어도 방문 그 자체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서점 문턱을 나선 뒤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이 부산물로 생기는 것이야말로 이 작은 공간의 진정한 장점 아니겠는가. 기분좋은 불편함은 독립서점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다. 모순되는 두 단어가 결합된 감정을 느끼고픈 사람들은 주변의 독립서점을 방문에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