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영화를 보고 난 후 밀려오는 풍경들

아침형 인간이 아닌 성실한 부엉이가 보았던 새벽 풍경에 대한 이야기

by 김리경

TIME


아직 신생아 수준의 글 개수이지만, 브런치 글 내용만 보더라도 나는 첫차, 심야 카페 등 새벽 시간대를 매우 좋아한다. 때문에 심야 영화는 빠지면 섭섭할 정도. 아침형 인간보다 성실한 부엉이에 가까운 내가 지난주에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심야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최소한의 인력으로 소수의 관객을 맞이하는 시간대. 영화가 끝난 뒤 직원들은 당연히 없다. 관객들은 그간 길들여 온 습관으로 안내 없이 척척 자연스레 쓰레기를 버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흩어진다.


여기까진 별반 평소 심야 영화관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풍경은 영화가 끝난 뒤 야외 연결통로로 가는 길목에서 펼쳐졌다.

KakaoTalk_20200507_213205097.jpg 눈에 담은 달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하늘이란 어두운 스크린에 샛노란 달 조각이 가득 담겨있으니 그곳이 바로 영화관 같았다. 불과 10분 전 온갖 것들이 폭발하고 울그락한 한 히어로들이 한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을 활보하고 있었는데 하늘 스크린을 쳐다보니 그것은 상대도 안된다.


쌀쌀한 밤공기와 함께 시원함이 4D 영화처럼 가득 밀려왔다. 7층의 야외 정원(연결통로)을 둘러싼 큼지막한 건물들의 불빛들은 고요했고 매우 적은 전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때문에 깜깜한 하늘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서울 가운데에서 7층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이렇게 낭만적이었다니. 운이 좋았던 건지, 체감 상 그런 건지 달이 그날따라 매우 컸다. 매번 영화가 끝난 뒤 자연스레 실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수순이었지만 심야시간은 이렇듯 한 번씩 다른 길로 안내한다.


이어, 집으로 향하던 중 좁은 골목길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고양이부터 빨간불만 뻔덕이는 신호등까지 새벽에는 새로운 규칙으로 새로운 주인이 골목과 공간을 다스리고 있었다.


심야영화 한 편이지만, 그 뒤 밀려오는 풍경들이 지불한 영화값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새벽 풍경 하나로 호들갑인가 하겠지만 아직까지 내게 그런 감수성이 있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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