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은 걸까요.
어디에선가 이런 뉘앙스의 문장을 읽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가엾게 느껴지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뭐 대충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몇 년 전만 해도 평생 내 부모님께 가여움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내 무능력함과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그들에게 가여움을 느끼게 됐다. 예를 들면 잠이 깬 이른 새벽 침대에 폭 싸여 누워있는 사이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기척을 느꼈을 때라던가.
새벽에 잠을 못 이룰 때 창 밖을 본다. 의외로 움직이는 것들이 많다. 차라던가, 불빛이라던가 말이다. 나는 그것들이 나를 채찍질하는 것만 같았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누워있는 나를. 나이 든 아버지를 여태껏 출근하게 만든 못난 장녀를. 나는 그 새벽에 왕복 네 시간이 넘는 길을 출근하러 가는 아버지가 가여워졌다. 어느 순간 많아진 흰머리를 마주하기가 두려워져 애써 눈을 피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나쁜 아빠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한창 조울증이 심했던 2019년 정신병동에 입원을 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미안하다 “는 말을 무시했다. 아버지가 어렵게 꺼낸 사과의 말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버렸다. 난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시간은 지났고, 병은 점점 나아지는 듯했고, 병으로 헛되게 보낸 몇 년이 지나가자 마치 시간여행을 하다 돌아온 듯 현재를 마주한 나는 어리둥절한 것이다. 내가 과거에 했던 것들이 꿈 같이 느껴졌다.
난 더 이상 나를 가여워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연민을 가지는 내가 어색하다. 오만하다고, 이렇게도 느껴질 정도. 난 이제 아프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정상적으로 사는 삶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런데, 누군가를 용서할 마음이 든 것만으로도 다 잘 된 게 아닐까. 늦었으면 뭐 어때. 내 삶의 속도가 이런가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