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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은 솜

by 유진

오랜만에 걷기 운동을 했다. 최근에는 여행도 다녀오고 사람도 만나고 일도 구하고 있어 나름대로 의지와 기력이 넘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몸이 더 축 쳐지는 것만 같다. 엄마와 말없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걷기를 40분, 원래는 두 바퀴를 돌기로 했는데 우리는 한 바퀴 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씻고 나면 개운해질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씻는동안 더 무기력해지는 게 이상했다.

몸이 물 먹은 솜 같다. 우울증에 걸리면 딱 저런 느낌이라던데, 나는 나아졌다고 믿었는데 이상하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까봐 너무나도 두렵다. 내일은 성남시 자살예방센터와 상담을 하는 날인데, 내일도 걷기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까봐 벌써부터 겁이 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완벽한 겉모습을 가지고 완벽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나만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패배자가 된 것만 같다. 아무래도 '울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월경 전에 유독 이 기분이 깊게 느껴지긴 한다지만 왜이리 루저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뽀송한 솜이 될 수 있을까. 남들에게서 사랑받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물이 없는 새 것 같은 솜 말이다. 남을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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