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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약은 쌓여만 가고

by 유진

원래 아침에만 약을 먹었다. 일곱, 여덟 개의 약을 먹었다가 이제는 네 개로 줄였다. 살이 많이 찌는 바람에 폭식을 유도하는 약은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몇 주 간 우울감이 있었다. 잠도 많이 설쳤다. 그걸 말씀드렸더니 자기 전 약을 추가해 주셨다. 우울감을 줄여주는 약이라고 하셨다. 한 알 반의 동그란 주황색 약, 나는 그 약을 먹으면 기절하듯 잠이 들어 늦은 아침까지도 잠에 취해 있었다. 그 기분이 너무나도 싫었다.

약을 먹지 않게 됐다. 병원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내가 감히 “자기 전 약 먹기 싫어요! “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그러라니 그래야지. 그래서 약을 쌓아두게 되었다. 가끔가다 커피를 늦게 마셨거나 잠에 푹 들고 싶은 날에는 한 알이나 반 알을 먹는다. 지나치게 잠에 취하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데 괜히 그렇다.

서랍을 열었는데 꽤 많이 쌓여있다. 저걸 버릴까. 언젠가 또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어떡하지. 근데 어떤 날엔 잠에 들고 싶지 않을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에 서랍을 다시 닫았다. 그런데 오늘 밤은 그냥 싱숭생숭해서 반 알 정도는 먹고 자도 되지 않나 싶다. 생각이 많은 밤은 우울해지기 마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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