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다른 사람의 열정과 용기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아직 죽지 않았기에 자신의 삶을 수정할 수 있다는 해리엇의 당당한 기세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꿈을 향한 용기가 생긴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서로 다른 두 사람 앤과 해리엇의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부고 전문 기자인 앤에게 80살이 된 해리엇이 나타나 자신의 부고 기사를 부탁하면서 둘의 동행은 시작된다.
앤은 매일 에세이를 쓰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글을 보인 적이 없다. 누군가 글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저 혼자 쓸 뿐이라고, 자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만 말한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행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랜 팬이었던 라디오 DJ를 처음 만나게 된 날, 그녀는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서도 그저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선을 긋는다. 앤의 걱정은 늘 같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망치기 싫다는 것. 오랜 팬이었던 자신이 막상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둘 사이를 망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 말에 해리엇은 황당해하며 말한다. ‘애송이. 오늘 처음 만났는데. 관계는 무슨 관계’ 그런 식으로 해리엇은 앤에게 가르침을 준다. 실수해도 된다고. 실수가 너를 만들 것이라고. 가능한 크게 자빠져 보라고 소리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일시 정지를 여러 번 눌렀다. 망설이고 주춤하는 앤의 어색한 동작들이 내 몸에서 나온 듯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감정이었고, 내가 숨긴 표정이 영화에 들어있었다.
나는 에세이를 쓰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며칠을 몇 달을 그러다 몇 년을 서성였다. 쓰고 싶은 말과 보이지 못할 이야기가 늘 겹쳤기 때문이었다. 어떤 글은 쓰면서 회상하기조차 싫었고, 어떤 글은 이 글 하나로 누군가가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 글은 그럴듯한 수사로 이리저리 휘감은, 알맹이 없는 문장이 되었다.
작가가 꿈이라고 말하면 우습게 보겠지, 그러나 그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이런 반복되는 고민 속에서 글을 쓰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왜 읽어야 하지? 누가 읽지? 재밌어할까?’ 그 순간 글을 이루는 문장과 단어 모두가 다 어색하고 무의미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글에 대한 자신감은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꺼내보는 편지가 있다.
‘두려움이 문을 두드리기에, 문을 열어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중학생 때, 교생선생님께 받은 편지였는데 그 편지에는 격언과 함께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정말 네가 좋아하는 일이 생길 거야. 그때가 오면 겁먹지 말고 도전해.’
당시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도 나는 그 편지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 문장이 절실히 필요할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일까. 이 영화는 내게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편지처럼 다가온 영화였다.
해리엇은 자신의 잠재력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나만 아는 나의 빛나는 점이 분명히 있다. 그게 얼마나 크고 오래 빛을 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모르는 일에 지레 겁먹어 자신을 깎아내리며 안전하게 살지는 말아야겠다. 해리엇의 말처럼 야망은 자기 회의에 의해 무너지니까.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를 버린 사람이 손해다. 나는 멋진 사람이니까.
오늘도 나의 꿈을 무시하며 나를 기죽이려는 나에게 외친다. 손해 보는 사람이 내가 되진 말자. 나는 멋진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