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 중 아주 작은 일부만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될까?
나머지는 마음속 어딘가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두고 온 삶을 마주쳤을 때, 무섭게 요동친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흔들릴 때, 우리는 그 삶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오래 지속되어 이미 몸에 익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해주게 되고, 그 여인은 빨간 코트만 남긴 채 사라진다. 코트 속에 들어있던 책 한 권과 리스본행 야간열차표. 무심코 열어본 책에는 그레고리우스가 지금껏 느끼고, 생각해 온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책에 강하게 매료된 그는 무작정 리스본행 기차표를 쥐고 리스본으로 떠난다. 리스본에 도착한 주인공은 작가의 삶을 추적해나가게 된다. 의사이자 철학자이자 작가이면서 독재에 맞서던 혁명가. 그 삶을 쫓으며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위해 한걸음 나아간다.
영화는 초반부터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에 대한 언급을 한다. 그것이 주인공이 작가를 찾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나의 삶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삶을 목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방치하며 살아온 시간이 꽤 길었다. 그런 날들이 쌓여 마음속 어딘가엔 근거를 찾지 못하는 감정과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그런 하루 속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영화를 봤다. 나에겐 없던 시간을 보며 이입되는 감정에 의문이 들었다. 내겐 없는 다채로움을 마주할 때마다, 늘 꺼내드는 경험을 여기저기 갖다 대며 애써 공감하는 걸까.
작가가 되겠다고 당차게 작정했었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일로 여유가 없어졌을 때, 가장 먼저 손에서 놓은 것이 글이었다. 글이 내게 생긴 군더더기 같았고, 지금 하기엔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 한 권을 차마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가 그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 이유는 내가 도저히 써낼 수 없는 무엇이 들어서일까,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들어서일까. 그 두 가지가 무관하지 않아서 책을 붙들고 있었다.
‘그때’와 ‘만약에’가 만나는 순간,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수많은 문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결국엔 삼키고, 어딘가에 묻어버려야 할 문장들이 끝없이 생겨난다. 나를 스쳐갔던 시간 중 어느 한 부분이 확장되었다면. 그 시기에 더 노력했다면 내 마음에 어울리는 삶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른다. 이건 살아보지 않은 삶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 절대 오지 않을 이야기이다.
그러나 두고 온 삶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를 한순간에 변화시키기도 한다. 내가 멈춰둔 순간을 재생시켜 나아간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그 변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나도 준비를 하고 있다. 훌쩍 떠날 준비. 학창 시절 내내 떠나온 적 없는 동네를 벗어나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보고, 내가 담기지 못했던 세계에 나를 들이밀어보려고 한다.
우린 모두 엄청난 변화를 갑자기 받아들일 수 있다. 다들 살아보지 못했지만 나와 어울리는 삶을 하나씩은 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면, 그때 그이의 두고 온 삶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 기꺼이 받아들일 테다. 지금의 삶을 너머, 모두의 남겨둔 삶까지도 늘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