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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Dec 07. 2016

5월, 녹음, 우거지다

그러니까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아주 자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보며 “저 나무는 바람결에 무엇을 찾으려고 저렇게 많은 손들 내밀어 부단히 뒤지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내 눈엔 참으로 그렇게 보였던 순간이 몹시 많았다.


특히 겨울엔 그 손짓이 더 허망해 보였는데. 앙상해진 손마디마다 시뻘겋거나 혹은 시퍼렇거나. 아니면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라면 시력 따윈 포기해도 된다는 기세로) 뺜쨕거리는 전등을 휘감고도 ‘뭐라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내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는 것 아니겠나!’ 하는 결의 가득 찬 손짓을 멈추지 않는 바. 허망할지언정 스스로 운동 에너지를 끊임없이 발산한다는 점이 고맙기까지 했다.


없는 살림에도 겨울에 자리를 양보했던 저 가난한 가지 속에 이토록 많은 초록이들이 숨어 있었다니. 여러 번의 계절을 경험해도 매번 경이롭게 느껴질 뿐이다. 그저 나는 감탄하고, 최선을 다해 감탄하고 예뻐해 줄 뿐이다. 그게 내가 계절의 흐름에 관심을 두는 방법이며, 이 외에 달리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와아- 하고 저기서 우당탕 달려오다가 둘셋 정도는 제 신남에 못 이겨 넘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찬란하다. 어김없이 웃음소리들이 섞여 있고, 밤에는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울음도 간혹 있다. 야외무대에선 악기 조율이 한창이고, 두근거리는 소리들이 저녁 7시를 가득 채운다. 알 수 없는 향기가 야릇하고, 익숙한 촉감들은 더 생생하다. 귀가 간질간질, 눈은 어질어질. 5월이다.


녹음의 계절이 내뿜는 소리를 전부 음해 저장해 두고 싶다. 녹음의 자리엔 늘 녹음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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