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빼앗기

옛날 어느날

by 김지혜

매일 아침 지하철로 가는 길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란히 신호등을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들 분주하게 걸음을 재촉하며 몇몇은 지하철을 향해 질주한다. 그 사람들을 보며 나는 마치 뒤에서 누가 쫒아오는 듯 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은 삶이란 그림자에 종식되지 않기 위해 도망간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뛴다. 삶을 살기 위해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나 또한 살기 위해 매일 아침 같은 길목에서 초록불이 켜지길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렇게 일차 관문 같은 길을 지나면 지하철이 나타난다. 내가 타는 역은 종점이라 다행히 아침마다 앉아서 갈 수 있는 권력을 얻는다. 이것은 뚜벅이에게 엄청난 권력이자 특혜다. 대게는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서 자기 몸을 욱여넣고 각자 제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직장에서나 집값비싼 서울에서나 하다못해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은 자기 입지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관성에 의해 오른쪽, 왼쪽으로 몸이 휩쓸려도 제 설자리를 지키기 위해 꿋꿋이 버틴다.


회사에 도착해서 내 자리에 앉지만 그닥 편치는 않다. 회사의 막내이자 잡일을 하는 나는 내가 진짜 맡은 바가 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땐 그저 나는 공기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생각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있기 버거울 땐,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이 사회가 잠시나마 허락한 나의 공간이다. 사방으로 막혀있는 네모나고 작고 냄새나는 공간은 나를 안심시킨다. (몰래카메라가 설치 외어 있지 않을 거라는 단정 하에 말이다.) 마치 세상과 완벽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이 나는 좋다.


신성한 배설의 공간에서 난 나의 스트레스를 배설한다. 정신적 누드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육체적이기도 하다.) 주로 핸드폰을 만지지만 가끔 변기에 앉아 벽에 기대어 자기도 한다. 일단 시선에서 자유로우니 마음이 놓인다. 사무실이란 공간은 항상 경직되어 있고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내가 벌어가는 돈의 일부분은 사무실에 갇혀있는 고문에 대한 값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은 여럿이 있지만 고독하다. 화장실에서 나는 진정 고독하고 싶었다.


내 자리가 아닌 듯한 자리를 차지하며 언젠가부터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쉬던 숨이 어색해질 때면 일부러 깊은 호흡을 내뱉는다. 그래도 가끔 숨 쉬는 걸 잊어 부자연스럽게 숨을 쉬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이럴 때면 느낀다. 관성처럼 삶을 살고 숨을 쉬지만 그 관성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 낸다는 것. 끊임없이 발을 구르고 레버를 돌리며 멈추지 않게 한다는 것.

내 자리는 어디일까. 내게 허락된 공간은 어디 있을까. 지금 나는 어디를 지나치고 있는 걸까. 끊임없는 질문을 들이마시지만 내뱉을 수 있는 건 한숨뿐이다. 한숨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았다.) 내 존재의 무게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왔다 갔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삶이란 의자 빼앗기 게임 같다. 세상엔 항상 의자 한 개가 모자르다. 엄청난 노력 끝에 한 자리를 차지해도 언제 나자빠져 의자를 뺏길지 모른다. 항상 긴장상태에서 자기 의자를 부여잡고 편하게 앉아서 누릴 시간을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면 휘슬을 쥐고 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자리에선 그들이 보이지 조차 않는다. 그저 휘슬을 듣고 제빠르게 반응하는 것뿐이 할 수 없다. 항상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쯤 편히 앉아 안락감을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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