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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현 Jan 03. 2021

피와 무지개

빠이(pai)에서 생긴 일


 

 전날 준영에게 오토바이 강습을 받았다. 자전거만 탈 줄 알면 오토바이는 식은 죽 먹기라는 준영의 말에 나름 자신감이 생겼다. 점심을 같이 먹은 친구들이 오토바이 빌리는 것을 도와줬는 데, 내가 겨우 하루 전날 배웠다는 사실을 듣고선 하나같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멍청한 건지 용감한 건지 호기롭게 운전을 시작했다. 당연히 어설프고 불안했다. 고속도로보다 골목길 운전이 더 힘들듯, 사람 많은 여행자 거리를 오토바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머릿속으론 '사고 나면 안돼.. 사고 나면 안돼..'만 되뇌며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밤부 브릿지 였다. 







 빠이는 큰 원형으로 국도를 따라다니면 관광지가 길 따라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험하거나 낯설 일도 잘 없었다. 그런데 국도에서 밤부 브릿지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무언가 불안했다. 표지판도 아주 작아 몇 번을 지나치다 겨우 찾았고, 길도 좁고, 경사도 심했다. 몸은 이미 긴장하기 시작했고,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직진. 비포장길엔 크고 작은 돌과 구멍들이 잔뜩 있었고, 잦은 커브와 경사도 심했다. 멈추는 것도 모르겠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 좀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가는 길에 경찰이 단속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앞서 가던 두 서양 여자애들에게 오토바이 세우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나는 그냥 보내줬다. 왜일까. 왜? 뭐 나쁜 일 생기지 않았으니 '럭키!' 하며 올라갔다. 입구 쪽 경사만 지나니 나름 갈 만했다. 2-3시쯤이라 햇빛은 선명한 노란빛을 띄었고, 아래쪽에 넓게 펼쳐진 초원의 풀과 나무들은 바닷물이 반짝거리듯 햇빛을 가득 품은 채 물결쳤다. 나는 아주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오래 기억하려 했다.  




오랜만에 소나기 없이 날이 맑고 좋은 덕분에 밤부 브릿지는 최상의 풍경을 뽐냈다. 이곳은 사실 일반농경지인데 주민들이 농경 시 이동을 위해 대나무로 길게 이곳저곳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관광지화가 된 것이다. 주변엔 여전히 일을 하고 계셨다. 다리를 밟을 때마다 대나무의 삐걱대는 소리가 참 유쾌하고 즐거웠다. 입구부터 안쪽에 있는 작은 사원까지 산책하듯 쭉 걸었다. 그것 외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누구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이 또 다른 이에게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면 그것을 우리는 '여행'이라고 부른다. 






내려가는 길은 아무래도 올라갈 때보단 마음가짐이 달랐고, 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이 긴장되진 않았다. 익숙한 길을 지나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바닥에 구멍을 피하려 옆으로 핸들을 살짝 꺾자마자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속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넘어질 때도 느낌상 아주 천천히 굴렀던 것 같았는 데, 일어나서 보니 가방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손바닥은 긁혀 피가 나고 무릎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꿈치가 욱신거려 보니 피가 손목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픈 건 둘째치고 너무 당황스럽고 놀란 마음에 넘어진 오토바이를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데 한 커플이 올라오다 나를 발견했다. 이 엉망의 상황을 보고 내게 달려와 오토바이를 세워주며, 조금만 내려가면 사람들이 있다며 일러 주었다.  그런데 너무 야속하게도 정말 그 코너만 도니 비포장길도 끝이고, 휴게소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도 많았다. 오토바이를 정차하고 몸을 다시 훑어보았다. 가지고 있던 물로 피를 씻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옆에 있던 외국인들에게 휴지를 빌리려 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는 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서 팔꿈치를 들어 피를 보여줬더니 그제야 할 수 있는 모든 외국 리액션을 하며 가방에 가진 티슈를 잔뜩 꺼내 주었다. 그곳에 있던 외국인들이 돌아가며 내 가방에 휴지를 넣어주기 시작했다. 뜻밖에 뜨끈한 인류애를 느꼈다.




어쩌저찌 피를 닦아내고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다시 숙소에 돌아가는 데, 마음이 너무 떨려 운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긴장 놓치면 이제 정말 큰 사고 난다는 생각에 핸들을 꼭 붙들고 집에 도착했다. 호스트 '토드'에게 보여줬더니 '아이고 두야,,'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자기 방에 있으라고 했다. 토드도 얼마 전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방에 들어와 내 팔, 손, 무릎 다친 곳 전부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밴딩을 해주었다. 그는 그 날부터 이틀을 더 아침저녁으로 내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모든 상황들이 아찔했지만, 내가 이렇게 정이 깊고, 상처치료에 해박한(?) 주인이 있는 호스텔에 지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에 소름 돋았다. 사실 팔꿈치의 상처는 꽤 깊어서 꿰매야 했을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토드의 관리 덕분에 자가치료로도 충분했다. 괜히 욱신거리는 팔꿈치를 만지작거려보며 잠에 들었다. 










그날 나는 애매하게 다친 것이 분명하다. 다음날 여기저기 붕대를 감은 채로 다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집을 나섰다. 왜 그렇게 쉬지 않고 또 어디론가 가려했는지 모르겠지만,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서 나름의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이전날 돌아다니며 봐 뒀던 카페도 가고,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카페도 가며 시간을 보냈다. 첫날 캐년에서 본 일몰이 좀 아쉬워 다시 향했다. 해질 때쯤부터 날씨가 맑아지던 날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고 지는 해와 붉게 물드는 하늘을 멍하니 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려 뒤돌아봤더니 무지개가 이쁘게 떴다. 후에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미얀마 건, 라오스 건 무지개 보는 일이 참 쉬운 일이었다. 무튼 여행 중 처음으로 만난 무지개이기도 했고, 마침 사고로 몸도 다친 상황에 보니 마음이 더욱 희망으로 가득 찼다. 마치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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