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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현 Nov 18. 2020

60km

걷고, 또 걷는다

 3일만에 깨끗한 화장실에서 뜨거운물로 샤워를 하고 게하의 옥상 테라스에 앉아 진토닉을 홀짝이며 글을 쓴다. 눈꺼풀이 무겁고 종아리 근육들이 욱신거린다. 샤워 후 몸은 너무 개운하고,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나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택시를 타고 마무리 하지 않았음에 정말 감사한다. 아무 사고없이 60KM를 완주해낸 나에게 오늘은 진심으로 조금의 의심의 여지없이 칭찬을 한다. 근 몇년안에 한 일 중에 가장 기특하다. 이 2박3일의 여정에 대한 느낀점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만큼 많다. 시작부터 끝까지 깨닫고 느끼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본능적인 '체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살면서 이만큼 나의 정신력을 테스트 해 볼 일은 몇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일하는 것 자체가 정신력테스트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생존을 위한 일과적인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던 것 같다. '포기하지 말자.'  정말이지 지기싫었다.  안으로부터는 나 스스로, 밖으로는 한국을 대표해서 말이다. 우리 팀에는 나를 포함해 10명이었는데, 한국인은 나혼자였고, 하필 다들 유러피안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괜히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해야했다. 여행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각오였는지 이해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트레킹은 누구보다 훌륭히 해냈다. 멋있었다. 충분히 즐기고 완주했다. 사실 체력적으로는 너무나 힘들었다.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씩 3일을 걷는 것을 너무 가벼이 생각을 했다. 3달째 여행하는 중이니 걷는 것정도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고, 걷기 시작한지 3시간만에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 지 알게되었다. 첫날부터 발에 물집이 잔뜩 생겨 둘쨋날 아침에 다 짜내고 약을 바르고 시작해야했다. 둘쨋날 까지만 해도 근육은 버틸만 했는데, 삼일째 되니 다리가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내 의지로 걸었다기보다는 걷고있어서 걷게 되는 관성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도 절대로 택시는 타고싶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도착하는 방법외에 다른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거의 절뚝거리며 걸었지만 그 모습이 밉지않았다.

 

 


 첫날은 어느 가정집에서 머물렀고, 둘쨋날은 사원에서 잠을 청했다. 그 장소들은 트레킹 회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거래처(?)같은 것이었다. 화장실은 있지만 샤워실은 없었다. 샤워할 공간은 있었다. 다만 내 어깨까지 오는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안에 물을 받아놓고 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따뜻한 물은 없다. 낮동안의 태양의 열기로 데워진 물을 쓰는 것이다. 비키니를 입고 샤워해야했고, 제법 어두워졌을땐 모조리 다 벗고 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명이 없어서 샴푸를 찾기도 힘든 정도였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

잠자리는 좋고 나쁘고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베개와 이불 그리고 몸을 뉘일 요매트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머리가 닿자마자 잠들었다. 아니, 기절했다.

 이 여정에서 잊지 못할 것 중에 하나는 음식이었다. 고기 반찬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고기반찬없는 상차림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나또한 채식이 맛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늘 고기가 익숙하고 고기가 있어야만 차림이 갖추어 졌다고 생각했다. 아니 훈련받았다. 채식이 대단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시도해 본 적 없던 경험이었다. 야채와 채소, 곡식들로만 만들어진 음식들은 가벼우면서도 든든했다. 단순히 허기져서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반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즐기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채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기를 안먹는 다는 것은 내 삶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도조차 해보려 하지 않은 일이었다. 채식을 하는 생활패턴 뿐만 아니라 요리방법과 재료들에도 흥미로워서 새로운 문을 열게 된 것 같다. 여행을 통해 하나씩 열어가는 문이 있다면 이 때 하나의 새로운 방을 만들었다.































 


  트레킹을 하기로 결심한데에는 걸으면서 내 미래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안으로 들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걸으니 미래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막상 한국에서의 내 삶이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은 의도하지 않았던 바깥의 나를 잔뜩 보게되었다. 어떤 그룹 속에 있는 내모습은 역시나 참 서툴었다. 단순히 언어가 달라 소통하기가 힘들어서라기 보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을 설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할 땐 상황이 좀 다르지만, 이렇게 짧고 특수성이 있을 땐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늘 어렵고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인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그 속에 있는 나를 지키고 타인에게 모습을 설정하는 데에 마음쓰는 것이 더 힘들었다. 친구와 있었으면 좀 달랐을 지 모르겠지만 혼자 있을 땐 내가 알았던 나, 그대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생각이 머리에 가장 가득했다.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한국은 너무나 좁았고, 내가 생각한 것들은 여전히 작은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의 사회는 작은 우물 속에서 아웅다웅 우리끼리 싸우며 그저 서로 경쟁하기에만 바쁜 구조인 것 같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세상을 이야기 하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독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입학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주로 자유롭게 가진다고 한다. 학교에서 졸업해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스스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참 성숙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않으면 앞으로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줄 알고 줄서서 대학을 들어가는 한국의 현실과 참 달라 부럽기도 했다. 반대로 정치적인 문제나 생활수준, IT기술같은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뿌듯하게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을 사랑하는 것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니까 더 확신이 생겼다. 여전히 배울게 많았다. 내 작은 세상 밖으로 나가 더 많이 배우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 확인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집잡힌 발로도 60km정도는 완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너무 힘들어서 멈추는 것조차 힘들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인지 걸어가봐야겠다.

태어난 김에.





https://www.youtube.com/watch?v=3wGHm0eKB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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