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생각. 무의식적인 반복된 행동으로 단순해진 생각.
베지테리언 까페에서 밥을 먹다 문득 채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껄로에서 시장을 지나가다 야채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채식'이라는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처음 접해본 것도 아니며, 당연히 신선하게 느껴진 것도 아니다. 심지어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가 채식주의자지만 채식이라는 생활패턴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근처도 가본적이 없는데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번쩍이었을까.
육류는 아주 맛있다. 당연히 맛있는 것을 먹고자하는 본능을 포기하려거든 그에 맞먹는 엄청난 이유가 필요하다. 동물보호라는 이유는 본능인 식욕을 억제하기엔 사실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 그럼 갑자기 채식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단순히 동물을 보호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추측하건대 육류를 먹는 행위는 내 안의 가장 크고 깊은 폭력성이 아닐까한다. 육류를 먹음으로써 억압된 무언가를 해소하고, 어떤 우위에 선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육류를 먹을 때 나는 가장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질겅질겅씹으면서 그 피와 살맛을 음미하며, 누군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자하지 않았던가. 생각의 원인을 찾아보는 일련의 과정속이라 여전히 확실하진 않지만, 고기를 먹는 내 모습을 떠올렸을 땐 적어도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육류가 식탁으로 올라오기까지는 도축이라는 과정이 존재하니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나는 그 행위에 동의하고 기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쾌락도 같이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대부분 도시에서는 동물을 보는 일은 드물다. 수많은 종중에서 기껏해봐야 개와 고양이 정도. 만약 우리(인간과 다양한 동물)가 같이 지낸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여전히 정복할 수 있는, 식용으로서만 존내하는 어떤 것정도에 불과할까.
채식이 동물보호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는 있지만, 동물보호의 측면에서 채식을 바라 본 것이 아니니 인간은 당연히 동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 인간이 고기를 먹는 행위는 생태계 피라미드를 드밀며 자주 쉽게 설명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동물이 식탁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염두해 두지 않은 채 말이다. 반인륜적으로 키워지고, 도축되며, 인간에게 조차도 유해한 사료와 약물을 주입하는 것은 애써 모른척 하며 우리는 질겅인다.
껄로에서 시작되었던 채식에 대한 아이디어는 1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비건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모른척하고 방관하지는 않는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늘 노력하며, 불필요한 고기 소비를 줄이고자 한다. 더불어 비건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요리방법들을 배워보곤 한다. 나하나의 변화로 이 세상의 동물들이 행복해졌다거나, 환경이 보호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나'라는 우주가 나만을 위한 것에서 이 지구에 함께 하는 것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운이 좋다면 지구에 영향이 미치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