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아저씨네집(라오스여행일기)
사이 아저씨네 집.
우리가 루앙프라방을 못떠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싸이아저씨네 때문일 것이다. 싸이네 집은 루앙프라방 여행자 숙소street라 불리는 주 골목, 그 곳에서 골목길로 들어가야한다.
얼굴만 들이밀어도 나오는 곳이지만 관광객들의 숙소로 즐비한 옆 골목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이다.
아주 오래된 빌라, 작은 구멍가게와 미용실, 닭과 오리를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가정 집, 그리고 짓다만 공사장에 둘러싸인 유일한 신식건물인 게스트하우스가 아저씨네 집이자 우리의 보금자리다.
무엇보다 여행자들이 거의 발걸음 하지않는(그들의 흥미를 끌 만한 구석이 없는 곳이라 동네 사람이 아니라면 길을 지나가는 사람조차 거의없다)공간에 게스트 하우스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 우리도 놀랐다.
하지만 싸이아저씨네 집 만큼은 밝은 레몬색 2층집에 시원한 테라스(이 테라스는 방두개를 연결시켜준다)에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단연 눈에 들어온다.
깔끔하고 세련된 신식건물에 아기자기한 내부 인테리어, 게다가 장기여행자인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도 살리며 공용공간을 둘 수 있는 우리에게 딱이다. 에어컨이 없다는 이유로 저렴하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가격에 이런 숙소라니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에 3일만 있다가 방비엥으로 다시 떠나려던 우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치다 이 방에서 딱 2주를 지내다 왔다.
하는일 없이 숙소에 늘어붙어 있을때면 항상 들을 수 있는 옆집 아기 울음소리, 사이아저씨네 막내아들 아톰이와 이웃아이들이 진흙탕 물에서 노는 모습, 마을의 사랑방이나 마찬가지인 건너편 슈퍼집에서 아기엄마들이 카드하는 모습들을 늘 볼 수 있다. 가끔 사이아저씨네 앞마당에서도 맥주축제가 벌어진다.
우리는 2층 테라스에 앉아 이런 정겨운 모습들을 감상한다. 밖에 나가지 않을때는 방안보다 테라스에서 기거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동네 사랑방인 수퍼 앞 처마,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위해 처마밑에 나란히 선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동네 사랑방인 수퍼 옆 집 이동식 판매대를 두고 장사를 하는 국수집 아주머니는 솜씨가 참 좋다. 여행책에 나온 맛집을 모두 찾아 다니고 국수라면, 이 일대의 국수를 다 먹고 다닌 우리가 꼽은 최고의 맛집이다. 새벽 5시만 되면 알람시계처럼 아주머니는 매일 큰 칼을 들고 그날 쓸 야채들을 서걱서걱 썰고 아저씨는 약을 다리듯이 뜨끈한 차를 끓인다. 국수를 한 그릇할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따뜻한 차를 한잔두고 사라지시는 아저씨, 결명자차 비슷한 맛이 나며 한잔 마시면 왠지 모르게 몸이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차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벌어지는 맥주파티, 이 시간 만큼 좋은 것이 또 없다. 이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맥주를 얻어 마셨던가, 아마도 우리 며칠 숙박비 값은 전부 맥주값으로 쏟아부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그 날도 떠들썩하고 유쾌한 술판이 벌어졌다. 사이아저씨는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맥주병에 동전을 넣는 시도를 하다가 번번히 실패하고 있었고 아저씨의 친구, 또 은행에 다닌다는 축구광팬(아들과 함께 맞춤 유니폼을 입고왔다) 친구와 그의 아들도 와서 놀고 있었다.
무르익은 술판에 갑자기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캄)의 절친, 옆집 아줌마의 남편이 다짜고짜 오더니 부인의 머리를 후려친다. 아기를 안고있던(매일같이 듣는 옆집아기 울음소리의 주인공) 아줌마도 놀라고, 아이도 놀라울고 선과 나도 사색이 되었다. 다들 뜯어말리고 정신이 없던 찰나 내 옆의 선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옆집 남편과 부인 사이에 당당하게 끼어들어 있던 그녀. 양손은 주먹을 꽉 쥐고, 알아듯지 못할 말로 무어라 그 남자에게 따지는 듯 고함을 지른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뜯어말려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분을 이기지 못한 남자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 던져 산산조각이 난다.
그 집에는 방금의 아기를 포함해 초등학생 정도되는 사내아이들이 둘이나 더 있는데... 그 아이들의 어둡지만 담담한 표정이 이런일은 익숙하다는 듯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선에게 물었다.
"너 정말 깡좋다. 그런데 앞으로 그러지마, 그러다 정말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어."
그러자 선이 묻는다. "뭘?"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제 싸움에서 네가 끼어들어 남자와 싸우는 줄 알았다며 위험했음을 주지시켰더니 선이 말한다.
"내가?" 정작 그녀는 그 사건은 기억을 하면서도 자신이 했던 행동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의 무모하지만 정의로운 주사에 박수를 보낸다. 이후로도 술을 마시고 했던 재미있던 에피소드들을 말해주면 그녀는 항상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듣는양 재미있어 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_ 진흙탕에서 노는 아이들(한번은 비오는 날 너무도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 모습에 같이 놀다 진흙탕에 빠진적이 있다)
라오스에서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라오비어 일 것이다. 식당에서 돈 주고 물은 사먹기 아까우니, 당연 물보다도 훨씬 많이 마셨다. 라오스의 덥고 습한 기온은 절로 시원한 맥주를 부른다.
무엇보다 중독성 있었던 것은 이들의 맥주마시는 방법니다. 맥주잔에 얼음을 가득 넣고 맥주를 위스키처럼 희석해서 마신다. 밍밍하지만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 은근히 중독성이 강하다. 물을 마시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독한 술을 주구장창 마실 수 없으니 오래도록 시원함을 즐기면서 마시기에 딱이다.
어른들이 술파티를 벌일 때 10대 아이들도 한 두잔씩 합법적으로 얻어 마실 수 있다. 나이가 두배는 적은 친구와 건배를 하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초등학생나이때도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얼마나 성숙한가... ...
떠나기 전 선물로 편의점에가서 먹고싶은걸 잔뜩 고르라고 햇을 때 10대 친구들(데이빗과 잭)은 하이네켄을 골랐다.
그리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빠인 사이아저씨에게 말해 굳이 예약한 버스에는 짐만 보내고 본인들이 터미널로 태워주겠다고 말하던 그들, 우리는 그 마음에 감동해 짐을 분실할 위험도 감수한 채 그들의 제의에 응했다. 해질녘 오토바이를 타고 맏는 바람은 선선하고 울적했다. 익숙했던 마을을 떠나, 여행자들로 북적한 거리를 지나, 언덕을 오르고 돌아 터미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해가 져 어둑했다.
우리는 내리고 마지막 작별인사, 혹은 악수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내리자마자 bye라는 말만을 황급히 던진 채 우리의 인사는 듣지도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세상의 10대들은 모두 쿨하고 조금은 수줍은 면을 간직하고 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사이아저씨는 우리가 처음으로 갔을 때도 떠날 때도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그래서 첫날과 같이 마지막 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해 주었다. 앞집 수퍼 아저씨도, 국수집 아줌마 아저씨도, 앞서 사건이 있었던 옆집 아줌마도(행복해지기를...), 우리만 보면 매일 같이 울음을 터트리던 아기도 모두들 나와 인사를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찔끔날 것 같아서 빨리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아저씨를 찾아 둘러보니 아저씨는 2층 테라스, 우리가 항상 있던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레몬색 건물과 2층에서 손을 흔들던 아저씨의 작은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기억되었다.
‘여행까지 가서 이런 모습에 이끌리고 평범한 동네 풍경에 시간을 쏟았을까’, 생각해보아도 압도적이었던 꽝시폭포나 그 유명한 사원보다도 결국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고 그리운 것은 이런 일상적인 풍경과 사람들이다.
맥주파티가 끊이지 않았던 마당
우리가 꼽은 루앙프라방 최고의 국수, 그곳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던 테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