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마이라오(라오스여행일기)
‘삐마이 라오’
라오스의 새해(삐마이)를 일컫는 말이다. 라오스의 신년은 4월 중순이다. 공식적인 새해 명절은 우리나라처럼 3일간이지만, 많은 이들은 몇 주를 쉬면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특히나 타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일 년 만에 가족을 보고 일을 쉴 수 있는 기간이니 이 시기가 다가올 때쯤이면 한 달 전부터 분위기가 들뜬다고 한다. 도회지에 나가 있는 시골 출신 사람들은 오로지 이 날을 위해 1년간 돈을 모은다고도 하니 제대로 된 국가적 축제라 할 수 있다. 명절도 아니고 축제라는 단어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뜬다.
송끄란(태국어: สงกรานต์, Songkran)은 매년 4월 13일에서 4월 15일까지 태국의 설날이다. 남부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달력들이 이 날을 설날로 한다.
이 축제일은 원래 점성술에 따라 정해졌으며, 지금은 고정되어 있다. 또 송끄란의 전후 약 10일 간은 테이사칸 송끄란(송끄란 기간)으로 불리며 휴일은 아니지만 축제를 즐긴다. 원래는 순수하게 신년을 축하하는 행사이며 가족이 한 집에 겉아 모여 불상의 정화를 행하거나 어른들이 가족의 정화를 실시하는 기간이었지만, 후에 단순한 물의 정화로 발전했기 때문에, 현재는 설날이라는 개념보다는 축제라고 하는 색채가 강하다. 이러한 취지의 축제는 태국뿐만 아니라 미얀마나 라오스에도 존재한다.
[출처 – 위키백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한 도시)은 역사가 가장 깊은 도시인 만큼 이러한 축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전체에 물폭탄이라도 맞은 듯 벌어지는 물놀이와, 사원이 늘어선 메인거리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퍼레이드, 사원에서 진행하는 의식도 볼 수 있고 도시 전역에서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더운 나라에서 그러하듯, 물을 뿌리며 서로의 복을 빌어준다고 한다.
신년축제라… 어떤 모습일까? 설날에 친척들과 모여앉아 떡국을 먹고 다소곳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새해인사를 드리는 우리의 명절이 스쳐간다.
들뜬 마음을 안고 우리는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사원들이 들어서 있는 메인스트리트로 이동했다. 어제 야시장에서 구입한 이국적인 문양의 원피스를 걸쳐 입은 채로.
거리는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각기 다른 신년문화를 지녔을 세계의 관광객들, 퍼레이드 참가자, 지역주민들에 의해 발 디딜 곳 없어 ‘틀림없이 잘 찾아왔구나’ 안도하며 우리도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환전사건 이후로 우리는 매사에 의심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게다가 벼르고 별러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가이드 책의 맛집에크게 실망을 하고 (사람,블로그,서적 포함) 무엇하나 계획과 같지 않으니 우리에게 흘러든 모든 정보를 일단 의심부터 하자고 마음먹은 직후였다.
푸른 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 열 댓 명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용 모양의 마차를 들고 행렬을 시작하며 퍼레이드의 선두를 이끈다.
뒤를 이어 끝도 없는 행렬이 길을 따르고 구경꾼들은 행운을 기원하며 이들에게 물을 뿌린다.
경건하게 시작한 퍼레이드는 어째 갈수록 익살스러워진다. 행렬에는 라오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끼어있다. 왕스님으로 보이는 나이든 승려부터 젊은 승려, 학생승려, 까까머리 동자승이 줄지어 지나가고, 토속신앙에서 파생된 것인지 멧돼지 혹은 코끼리와 같이 분장한 무리의 사람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아리따운 전통복장의 아가씨들, 귀여운 꼬마승려들, 운동선수로 추정되는 사람들... ...
얼마나 높이 퍼레이드카를 준비했는지, 퍼레이드 카 꼭대기에 앉은 사람은 마치 아파트 2,3층 높이에 자리 한 것 같다.
전통의상을 입고 아름답게 치장한 미스라오의 퍼레이드카는, 너무 높아서 전깃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퍼레이드카의 앞머리가 그 옛날 바이킹의 배처럼 높고 기세등등하게 하늘을 찌르며 전선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윗자리, 전선 바로 앞에 위치하여 비스듬하게 인어공주처럼 퍼레이드 내내 요염하게 누워 있는 미녀는 (아마 가장 높은 곳에 앉았으니 그녀가 미스코리아로 따지면 眞이 아닐까 싶었다) 멀리서 구경하는 나도 전깃줄에 혹여나 감전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아주 태연한 듯 무표정이다. 美를 지닌 댓가는 혹독한 것 인가보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긴 장대를 준비한 행렬이 감 따는 것처럼 전선을 더 높게 들어 올려주면 겨우 퍼레이드카가 지나가고 그 뒤를 다른이들이 따른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렬에게 물을 뿌려댄다. 물을 뿌리며 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복을 너무 과하게 빌어준다 싶다. 행렬이 이어질 때마다 물세례를 맞으니 걷는 이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묵묵히 걸어간다. 물을 맞으며 수킬로를 걸어야하는 이들에게는 고행길이 따로 없는듯하다.
몇몇은 젊은 승려들은 꽤나 엄숙한 표정으로 검정 장우산을 받쳐들고 간다.
눈이 시리도록 원색의 주황색 승복과 그와 대비되는 검정색 우산들이 무명화가가 그린 그림 속의 꽃밭같이 펼쳐진다.
우산을 펼쳐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퍼레이드 카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묵묵히 물을 맞는 승려가 있는가 하면 우산을 떠받치고 화투장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 숙연하게 걷는 승려들도 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연신 카메라에 담고자 애쓰다 나 또한 누군가가 뿌린 물세례를 흠뻑 맞는다.
쏟아지는 물 세례에 우산을 쓰고 걷는 승려행렬
멧돼지를 몰고가는 아름다운 여성들, 가장위에 요염히 앉은 미스라오 여성이 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선발기준은 담력일지도...
퍼레이드 막바지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행렬을 따라 붙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
“몰라, 우리도 일단 따라 가보자.”
흥이 난 사람들 뒤를 재빨리 따라붙어 우리도 행렬 맨 뒤에 섰다. 곧 우리 뒤에도 행렬들이 줄을 이었고 어느새 끝없는 퍼레이드 행렬의 가운데 서게 되었다. 우리는 셀카봉으로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댄다. 그때 뒤에서 몰려오던 아이들이 제각기 포즈를 취하며 우리의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해대며 친한척을 하니 자연스레 우리도 연신 웃게 된다.
걷다보니 곧이어 우리에게로 물세례가 쏟아진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신년 명절 축제. 그 오묘한 조합의 시간이
이 시간에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물세례를 피할 수 없다. 화를 내어도, 카메라를 가르키며 통사정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물세례와 웃음뿐.
일부러 내보이며 가리키며 “카메라, 카메라.... 노노”라고 외쳤건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 퍼붓는 물줄기들. 이미 여행서적에서 보았지만(카메라,핸드폰은 방수를 해야한다고... ...이때만큼은 여행정보를 신뢰했어야했다. )우리는 오늘은 구경만 하고 사진만 찍을 거라는 다짐으로 왔던터라...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 전체가 물축제 장이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존재는 사람이든, 개든 일단 흠뻑 젖어야만 이들의 직성이 풀린다.
이미 물은 맞을 대로 맞아 동정에 호소해보아도 걸어 가는 길 내내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듯이 물을 뿌려댄다. 심지어 호스로 연결해서 물을 쏴대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방어해야 하지만 가볍고 실용적이라 여행에 그만인 천가방은 이미 흠뻑 젖은 상태다.
(새해에 나와 같이 가방도 복을 많이 받을 것이다. 물축제에 가방은 꼭 방수가 되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카메라를 둘둘 감싸서 품에 안고 다녔지만 곧 이것도 역부족이다.
다른사람들을 보니 김장용 비닐같은 탄탄한 비닐로 카메라를 보호한 채 이 광경을 찍고 있다.
맞고만 있자니... 이젠, 즐겁다 못해 분하다. 숨고 숨기고, 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물총. 오늘은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어차피 옷을 버렸으니, 우리도 복수하자.
등에 물탱크를 가방처럼 메고 총을 양손으로 쏠 수 있는 나름 고급 사양의 물총을 하나씩 샀다. 현지 물가에 비하면 좀 비싼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다. 다행히 물총의 포장지인 비닐이 카메라 가방으로는 제격이다. 물총이 있던 자리에 놓고 두 번 감싸서 봉인했다.
준비완료!
총을 사서 물을 가득 채우고 이제는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쏜다. 주로 얼굴을 조준하여 눈을 못 뜨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경우에 따라서 노인이면 가볍게 팔이나 다리를 쏴준다.
그러다 물이 떨어지면 눈앞에 띄는 상가에 가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길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물싸움이 진행되는 여행자거리는 대부분의 상가들이 이 날을 위해 대야에 물을 잔뜩받아두거나 호수를 틀어둔다.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게... ...)
그렇게 축제를 즐기고 있노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행을 와있다는 것도, 오늘 우리의 여행 계획도.
테마파크처럼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축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친절한 미소가 아닌 수줍음, 짓궂음, 미안함을 담은 순수한 미소. 그 속에 우리는 지금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허공을 난무하는 물세례와 쏟아지는 웃음, 물로 무장한 전쟁터
누구든 적이 될 수도, 아군이 될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 없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hey’, 너 댓살 밖에 안되어 보이는 작은 꼬맹이가 지나가던 우리를 불러 세운다.
우리의 시선이 꽃히자 노래(집집마다 커다란 고무대야는 기본_ 좀 더 투자한 집은 대형스피커까지 거리에 모셔다 두었다. 마치 핸드폰가게앞을 지나갈때와 같은 느낌이다. . 제대로 즐길줄 민족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와 함께에 맞춰 신명나게 몸을 흔들어 댄다. 골반, 엉덩이의 유연함에 감탄하고 바라보고 있자니, 춤을 추던 꼬마는 익살스런 미소와 함께 춤 값이라는 듯 양동이를 들어 우리에게 물을 끼얹는다.
차가운 물세례에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 우리, 역시나... 대여섯살 밖에 안되는 꼬맹이한테도 또 당했구나. 우리가 너무 어리숙해보이나? 황당하면서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아본 경험이 나에게는 언제였었지? 생각이 잘 나지않는다.
축제는 사회를 이어주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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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아이들에게 물세례를 맞는 가련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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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축제를 즐긴 댓가 _ 온몸에 칠해진 원색의 색색의 물감.
지독하게도 지워지지 않는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데다 옷에도 물감이 들어 마침 준비해간 때수건으로 살갗을 벗겨내다시피 했다. ‘이제와 드는 생각이지만 이거 옷감 염색용 물감 아닐까?, 이렇게 옷에 잘 물들고 안 지워질 줄이야’ 무르익은 물축제는 물로 끝나지 않았다.
축제의 정점은 각양각색의 물감에 있었다.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할 때 누가봐도 패자라는 사실이 명백해 보이는 그런류의 물감...
그렇다... 나는 물싸움에 항상지고 다녔다.
하지만 여행자의 신분, 낮의 피곤함과 흥분은 가라앉히고 1분1초라도 더 이 도시를 보고 갈 것이다. 목욕재계 후 이틀 만에 사람답게 꾸몄다. 화장도 하고, 가져간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원피스로 골라 입었다.
명색이 여행인데 저녁에 바에가서 맥주도 한잔하고 해야될 터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첫 외출이다.(루앙프라방으로 오기위한 12시간의 버스여행과 대낮의 전투전을 제외하고)
여행자거리에 더 이상 물폭탄 테러범들이 없기를 바라며 숙소에서 나와 큰 길이 나오자 마자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목표한 지점에서. 아직도 트럭 위에 물폭탄을 장착하고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구나.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럼, 여행서에 나와 있던 조마 베이커리먼저 갈까?, 라오스의 스타벅스라던데. 마침 요기도 해야 하고 오늘은 거기서 커피와 베이커리 류를 먹자, 그러다 잠잠해지면 펍에라도 가서 맥주한잔 하는거야.”
발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숙소가 밀집한 거리라 조용하기도 하고 그 곳은 판이 벌어질 만한 장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왠 걸, 길 건너편에 우릴 향해 바가지를 흔들며 마치 몇 년만에 만난 친구처럼 해맑은 미소를 띈 청년들이 손을 흔든다.
“뭐야, 저 사람들” 저 들의 미소가 불길하다. 낮 동안에 타겟을 상대로 우리도 많이 지었던 표정이다.
“설마, 길 건너편인데 아무리 호스라도 물이 우리한테까지 오겠어? 지나가는 차들이 막아 줄거야,
그냥 냅다 뛰자.”
그래, 하나둘 셋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허나 등뒤로 느껴지는 이 느낌, 차가운 정도가 아니라 흠뻑물을 뒤집어썼다. 철썩, 소리와 함께.
“이런…” 몸에 묻은 물감을 지우느라 고생하고 머리도 매만지고 화장까지 곱게 하고 나왔는데…
줄행랑을 있는 대로 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양동이를 손에 들고 웃고 있는 그. 어느새 횡단보도를 질주하여 우리를 따라 잡아 한방 먹인 것이다.
‘우리에게 물먹일 일념하나로 위험도 불사하다니. 그 의지만은 높이 사겠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욕을 하며 안전한 실내로 피신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라오스의 스타벅스, 조마베이커리로 무사히 입성했으나, 평소라면 감사할 빵빵한 에어컨이 우리의 흠뻑 젖은 몸을 덜덜 떨리게 했다. 이날 라오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게 물을 퍼부었던 뿔테안경을 쓴 키다리 남자는 옷차림과 생김새로 한국인 여행자로 추정되는 몽타주였다.
그도 우리처럼 처음 느껴보는 광란의 축제에 심취했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민족끼리 너무한다 싶어 유독 그가 얄미웠다. 분명 우리의 호소를 알아 들었을텐데... ...
심기일전하여 다음날 완전무장한 채로 복수하기 위해 그를 찾았지만, 다신 그를 볼 수 없었다.
이 날이 그의 마지막 날이라 남은 미련을 불태우고 돌아갔나 보다. 비록 그 희생물이 우리였다는 점이 애석하지만...
밤낮, 비엔티엔과 루앙프라방에서 우리의 아지트가 된 조마베이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