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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Sep 21. 2023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정수리 위로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머릿속은 하얘지고, 와중에 눈앞에는 요란하게 펼쳐진 잡화와 사람들.  품목은 달라도 왁자지껄한 시장의 에너지는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풍경을 자아낸다. 통조림, 자연환경을 반영하듯 다양한 생김새의 나물, 생선과 육류, 그리고 물건 값을 깎으려는 쪽과 팔기위한 쪽의 실랑이, 산처럼 쌓여있는 물건들과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시장특유의 활기.
  하지만 이곳의 시장은 조금 더 야성미가 넘친다고나 할까?

냉동실에 넣지 않고 피가 흥건한 시뻘건 고기를 마치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사려는 사람이 나오는 즉시 
투박한 칼을 들고 요령 좋게 자른다. 마치 아직 살아있는 것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놓듯이 거침없고 빠른 손놀림이다.  얼굴만한 개구리를 산채로 팔기도 하고 쥐, 혹은 병아리를 통째로 구운 꼬치 등 경악할만한 음식들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 무엇보다 충격이었던것은 ‘더위’다. 낮 12시의 아열대지방의 더위, 한낮의 햇볕은 한톨의 자비없이 세상을 전부 장악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볕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뜨거움에 몸서리 칠 때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에 머금고 있는 덥고 습한 공기가 피부를 에워싼다. 마치 찜통에 들어와 있는 듯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차라리 걷는 편이 이 꽉 막힌 습기와 열기를 피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다.
  대낮에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이 아닌 현지인만의 공간에 들어선 것이 실수였을까?
더위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자부한 우리였지만, 라오스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 최고의 더위를 맞본 날을 꼽자면 단연 오늘이다.




대낮의 시장, 그리고 가정집 불앞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까무러칠 정도의 더위를 선사했다.
오늘은 켓선과 노이의 집에 초대받아 한국요리를 해주기로 한 특별한 날이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들은 한국문화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마음을 먼저 열고, 집으로 초대도 해 주기도 하고 근처의 사원과 명소를 오토바이로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이런 호의에 보답하여 멋진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어째 계획이 점점 어긋나는 것 같다. 우리의 메뉴는 비빔밥인데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고추장은 커녕 비슷한 칠리소스라도 구할 길이없다.

 
  오늘 같은 날에도 두터운 긴팔을 두 겹이나 입고 온 그녀들은 오히려 저녁에 만날 때보다 더 두텁게 껴입고 왔다. ‘이들은 더위보다 살이 타는 게 더 무서운가 보다.’ 시장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보다, 옷의 무게가 가벼웠음에도 우리는 쉴 새 없이 땀을 흘려댔다.
“너흰 덥지 않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별 의미없는 손부채를 부치며 물어봐도 당연한걸 다 묻는다는 듯 씩 웃으며, “더워” 한마디 하는 켓선, 얼굴이 울그락붉그락하는 우리가 오히려 우습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쳐다본다.
주차해둔 오토바이의 검정색 가죽의자는 계란프라이라도 너끈히 해낼만큼 뜨끈뜨끈하게 데워져있다.
‘이들이 긴팔바지를 입는 이유가 있구나, 반바지를 입은 우리들은 괴로움을 호소하며 잘 달궈진 안장에 허벅지를 맡겼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깔고 앉으라며 건네주는 노이. 
  장본 것들을 껴안고 노이의 허리춤을 잡고 그들의 집으로 출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좀 시원할 거라 예상했지만, 한낮의 내리쬐는 햇살앞에 한톨의 바람은 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달리는 순간만큼은 너무나 즐
겁다. 빠르게 옆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과 건물들, 골목골목 사원을 지나치는 순간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 화려함에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자동차를 탈 때는 볼 수 없었던 자세한 풍경까지 볼 수 있고  아는 사람을 보면, 달리는 채로 소리쳐 불러 인사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엔 거의 느낄 수 없는 한 점의 바람도 오토바이를 탈 때는 옵션으로 따라온다. 아마 라오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름다운 꽝시폭포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어떤 관광지도 아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순간들이다.
 켓선, 노이와 함께 달리던 흙냄새나는 시골길, 사이아저씨네 집(게스트하우스)에서 떠날 때 기어코 버스에 짐을 따로 실어 보내라며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던 주인집 아이들과 달리던 마지막  길.
 한 동안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름 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의 시원한 속도감, 그리고 여름밤의 코끝을 스쳐가는 풀냄새가 생각나 라오스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켓선의 집은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30분 남짓한 변두리에 있었다. 저 먼 시골(사이야부리)지역에서 유학 와 있다는 대학생 켓선과 노이. 켓선은 학구열에 불타는 모범생 타입이고 동생인 노이는꾸미고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정반대의 스타일인 자매다. 그럼에도 모든 자매가 그렇듯 이런말을 하면 기분나빠하겠지만 둘의 얼굴은 너무나 닮아있다.
     
호기롭게 한국음식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적어도 시늉이라도 해야하는데... 가장 중요한 고추장이 없다니, 우리는 고민끝에 나름의 비법소스를 제조해보기로 한다.
" 간장에 마늘이랑 섞어서 대충 매콤한 맛을 내면 되지않을까?" 선이 제안한다.
 " 그래, 그리고 칠리소스나 고춧가루 같은게 있으면 사서 섞으면 좋겠다."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었다.
 불행하게도 칠리소스도, 고춧가루도 이곳에서는 판매품목이 아니었다.
  일차로 간장을 넣었다.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마늘을 다져서 넣었다.
음…… 아직 2프로 부족해… 조금 더 진한 매운맛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고추를 썰어 마구 섞었다. 고추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콤달달 한 것이 비빔밥의 재료들과 조화를 이룰 것 같다.
 전통 비빔밥은 아니겠지만 소스없이 비비는 고역을 면했으니 그걸로 일단은 한 고비 넘겼다.

불고기 썰고 볶고, 계란 부치고, 나물도 삶고, 그런데 우리 왜 비빔밥을 하겠다고 한 걸까? 작은 시골집 부엌엔 창문도 없고 불을 지피니 그야말로 불가마가 따로 없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 오르다 못해 현기증까지 낫다.  '나는 소음인이라 땀을 흘리는 것이 피흘리는 것보다 안좋다고 한의원에서 그랬는데...'
게다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탁구공보다 조금 큰 작은 라오스양파는 왜 이리 매운지, 민선은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썰었고, 나는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불앞에서 재료를 볶아냈다.
 기진맥진한 우리, 땀과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우리는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점점 목, 팔 다리. 어느 순간에는  등목을 하듯 물을 끼얹고 나와 불앞에 서기 일수였다. 그 잠깐의 시원함 후에 다가오는 열기는 얼마나 더 뜨겁게 느껴지던지...

 부엌과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켓선과 노이가 슈퍼에 다녀오더니 비닐봉지를 내민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다.  작은 봉지 안에 담긴 모양인데 맛은 우리나라에서 파는 딸기아이스크림과 같다. 이렇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우여곡절 끝에 요리를 완성하긴 했는데 눈물, 콧물, 땀, 다 쏙 빼고 나니 입맛도 없었다. 완성되었다고 나와 부르러 가니, 집 앞에서 불을 피우고 무언가를 만드는 켓선과 그의 언니, 알고 보니 그들도 우리를 위한 현지음식을 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점심 한상이 차려진다. 고추장대신 우리만의 비법소스로 완성한(다시 만들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지 몰라 못만드는 비법소스) 퓨전 비빔밥, 그와 함께 켓선이 준비한 라오스 식 해물 탕(태국의 똠양꿍과 비슷한 맛)이 어우러져 나름대로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자매가 사다준 사막속 오아시스와도 같았던 아이스크림




그렇게 우리 둘, 켓선과 노이,자매의 언니, 그 언니의 시누인 남편 동생(노이와 친구이며 같이 살고 있다)까지 6명이 둘러 앉아 비빔밥 한 그릇과 해물탕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켓선이 방으로 들어와 쉬라고 한다. 있는 줄 몰랐던 고시원 같은 작은방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엔 작은 에어컨이 있어 시원한 게 아닌가? ... ... 아까 부엌에서 요리할 때 이대로 쓰러질 것 같다, 괜히 밥을 해준다고 했다며 수십번 후회하던 우리였는데... 선과 나는 약간의 원망과 의아가 섞인 눈길만 서로 주고 받을 뿐이었다..그때 깨달았다.
 우리에겐 죽음 같았던 더위가 이들에겐 일상이라는 것을, 방안은 시원했고, 우린 좀 더 일찍 에어컨이 있는 방을 소개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들은 우릴 위해 평소 틀지 않는 에어컨을 틀어준 게 아닌가 싶다.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해 유학 다녀와서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다는 켓선. 그녀는 한국어로 작성한 이력서와, 유학을 가기위해 준비해왔던 서류 등을 보여주며 눈에 반짝이는 별을 띄웠다. 순간 나의 대학생활이 떠오르며 얼핏 부끄러운 감정들도 생겼던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그리 멀지않은 땅의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당연한 마음 때문에 흥청망청 보냈던 시간들이 스스로에게 또 내 앞에 있는 꿈많은 학생에게 미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상차림. 국은 켓선과 노이가 생선을 넣고 끓여준 매운탕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행이라는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하고 그 시간적 제약 때문에 적극적이고도 열린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자’ 언젠가 들었던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우리의 시간도 결국은 끝날 것 이며, 매 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시간동안 잊고 지낸다.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그랬다. 여행은 낯선 곳까지 가서 굳이 나를 찾는 것이라고...  지금 내 명함에 찍힌 회사직함, 혹은 가족이나 사회에서 부여한 내가 지닌 역할을 제외하고 나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쩌면 우연히도 이곳에 태어났다면?하고 상상해본다.
 내 모습일지도 모르는 나를 닮은  누군가를 만나고, 나의 어머니, 친구의 모습을 먼 타국 낯선 이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것, 그게 나의여행이다.
 
학교 축제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는 켓선을 시작으로 그 이후로는 한국노래자랑 시간이 열렸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웠다는 곡이 좀 이상하다. 노사연의 ‘만남’,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너무 교수님 취향이 반영된 선곡이 아닌가...? 하지만 역시 우리의 막내 노이는 달랐다.
현아의 ‘빨개요’를 다음 축제 때 출 예정이라며 춤을 알려달라고는 하며 음악과 함께 보여준 그녀의 춤사위는 여간 연습한 실력이 아니다. 우리도 당혹스러울 만큼 과감한 몸놀림이다. 알려달라는 것은 말뿐이고 아마도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던것 같다.
 작고 낡은 원룸이지만 젊은 라오스 대학생들의 꿈이 자라고 있는 장소에서 나는 5년 전 내 모습을, 혹은 나의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이들의 친구였다. 나의 멋모르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었던 친구들, 지금도 가끔 메신저로 한국의 연예인이나 화장품에 대해 물어온다.
다음 번 방문 때는 선물로 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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