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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Sep 21. 2023

곳곳의 여행자들

라오스여행일기(2015)


누구나 버스, 전철을 놓치는 일은 있다. 나는 덤벙대는 성격에 그런 실수는 손에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중요한 일자에 이용할 교통수단은 철저히 계산해서 미리 계획해 놓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날 탈 것을 놓쳐버렸다. 너무 들떴던 걸까? 아니면 2번째 방문인 여행지에 대해 준비를 너무 소홀한 것일까?  비행시간을 착각해버렸다.
아마 그건 예약할 때 부터였을 것이다. 오전 9시 05분 비행기를 50분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다시한번 나의 어리석음과 숫자마저 내 마음대로 보이게 만드는 내 아집을 반성했다.
동행의 그렇게 늦게 와도 되냐는 말에 나는 비행시간을 확인했었어야한다. 굉장히 자신있게,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공항에 도착해 발권할 때까지도 몰랐다. 줄에 여유롭게 서있을 때 승무원이 몇시 비행기냐고 물을 때 당당하게 50분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텐데...
항상 벌어진 후에야 잘못 맞춰진 퍼즐처럼 실수의 시간들이 명백히 얼굴을 들이민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여유롭게 이티켓과 여권을 내밀었을 때, 당황하지도 않고 너무나 업무적으로 발권종료라고 하는 승무원,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단호한 말투가 얄밉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예의 그 사무적인 말투로 '곧 게이트가 닫히니 먼저 발권한 일행은 황급히 나가야만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선과 나는 서로 연락하자는 한마디만 나누고, 나는 달리는 그녀의 뒷통수에 외쳤다.
"호텔로 내가 찾아갈게, 기다려’ 그렇게 헤어졌다. 로밍도 하지않고 와이파이존에서 카톡으로만 연락할 수 있는 우리.  우리는 오늘 저 멀리 떨어진 낯선 장소에서 무사히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라오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의 일행만을 싣고 떠나가는 비행기, 홀로남겨진 나와 15kg 의 버거운 짐, 그리고 계속해서 연결이 안되는 항공권 고객센터.
혼란스러운 머리는 절박하게 전화기를 붙들고 항공권 예매센터만의 수화음만을 기다렸다.
 뚜뚜______ 뚜___ '나만큼 항공권을 놓친 사람이 많은걸까? 아니면 항공권을 지금 예매하는 사람이 많은걸까?' 어느쪽이 됐건 내게 좋지 않은 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어렵게 연결된 고객센터에서 오늘 중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부탁했다. 최대한 절박한 심정으로... 직원은 알아보겠다는 한마디를 남긴채 전화너머로  사라졌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여행사의 답신을 기다린다.
왠만해서는 실수도 경험이라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잡던 나이지만 그때만큼은 긍정적인 생각을 걱정이 짓눌러버렸다.
오늘 내로 떠나지 못하면 나는 어디서 자야할까? 이 짐을 이끌고 다시 집에 돌아갔다가 내일 새벽같이 다시 공항으로 오는 여정을 되풀이 할 수 있을까?  이게 단 둘의 여행이 아니라 다른 동행이 있거나,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나는 필경 집으로 돌아가서 그대로 짐을 풀었을 것이다.
무거운 나의 짐과 집에 돌아갔다 다시 나오는 일은 여행보다도 힘든일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녀 역시 뜬금없이 먼 이국에서 홀로 잠을 청해야하니 선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런저런 걱정이 한꺼번에 머리를 지배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다만 항공권이 나기를... 누군가 나처럼 비행기를 놓쳐서 그 자리가 내자리가 되기를 빌며 기다렸다.

한, 두시간이 지났을까? 다행히도... 오늘 저녁 떠나는 비행기가 있단다. 휴,.... 다만. 그 비행기는 베트남을 경유하여 오늘밤 하루 머물고 내일 아침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
‘다행이다, 오늘 공항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하는 동시에 급작스레 다가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예상치도 않았던 곳이다. 난 베트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데... 그래도 일단은 오늘 떠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하기로 한다.
일단 베트남에서 노숙을 할 수는 없으니 숙소부터 부리나케 예약한다. 그리고 베트남통화인 ‘동’으로 5만원을 환전한다.
숙소는 최대한 공항에서 가까운 곳으로 찾으려 하나, 차로 15분~20분을 가야 나오는 여행자 거리에 있다고 한다고 한다.
늦은 밤, 혼자 택시라... 게다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바가지도 많이 씌운다는데, 내키지 않긴 하지만 어쩔 수없이 공항에서 15분거리라는 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다.
이륙시각은 오후 8시, 현재시각은 오전 10시, 이제 8시간의 기나긴 공항노숙이 시작된다.
 
공항은 다만 지나쳐 가기에는 너무 완벽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인터넷 카페, 간이 침대, 샤워실, 영화관, 그리고 수 많은 벤치.
오전
10~11시 (1시간), 당황과 자책하기.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며 항공권이 있기를 기도하기
11시~1시 (2시간), 새로운 항공권 발행대기(인터넷 카페)e 티켓 출력을 위하여 발권되었다는
연락이 오기를 정처없이 기다리기, 베트남 숙소 예약하기
오후
1시~2시 (1시간), 점심식사_항공권을 예약하고서야 마음놓고 뜨끈한 순두부찌개로 마음을 달랜다. 외로운 내 식탁옆에는 커다란 친구가 버티고 있다.
/ 캐리어 끌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구경하기(해 본 결과 지친다)
2시~4시 (2시간) 수많은 벤치 중 하나에 앉아 비행 때 보려고 아껴두었던 영화를 본다
4시~6시 (2시간) 가장 힘든 시간(마의 시간), 기다리다 지치고 무얼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다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6시~8시 수속을 밟고 똑같이 기다리고 기다린다. 다행이라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들어가자, 덜 붐비고 널널한 좌석이 펼쳐져있다. 평소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면세점을 돌아다녔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다만 수많은 의자 중 하나에 앉아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오늘 가장 많이 본 모습이다. 공항에서는 왜 다들 이렇게 바쁜 걸음을 걷는걸까,? 문득 그들의 그 바삐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워졌다.
끊임없는 기다림, 외로움, 두려움,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다.
여행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여독이 밀려든다.
 
그리고 비행 전 문득, 두려움이 밀려온다. 계획도 없었던 머나먼 땅에 마음의 준비도 없이 늦은밤 떨어진다. 홀로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오전에 예약은 했으나 어딘지 모를 호텔에 잘 찾아갈 수 있을까?내가 아는 베트남은 무시무시한 오토바이 부대, 그리고 베트남 전쟁, 이런 차가운 이미지 뿐인데 이런 무서운 곳에서 무사히 내일 비엔티엔까지가서 일행을 잘 만날 수 있을까? 이동 중에는 서로 연락조차 안되는데... 걱정이 앞서 막상 비행기를 타니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베트남 공항은 예상했던것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라오스에 밤에 도착했을때에는 모든 곳이 문을 닫았고 강릉시외버스 터미널과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공항다운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공항앞에 분수를 보자 마음이 좀 편안해 졌다고나 할까’
급히 수집한 자료에 의거해 공항 앞에서 미터기를 단 택시로 골라 탔으나, 15분이라는 거리는 30분이나 걸렸고, 역시나 바가지를 쓴 듯한 가격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기로 했다.
베트남의 여행자거리를 숙소창밖으로 내다보았다. 어디나 그렇듯 북적이고 알록달록한 불빛과 잔뜩 들뜨고 조금은 취한 여행자들, 직접 와보니 꽤 즐길만 하다고 느낄만한 풍경이다.
 
잠을 설쳤다. 어려서부터 언니와 방을 같이 써온 탓인지 혼자서는 영 잠을 못 잔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국에서 어쩌다보니 홀로 잠들어야하는 처연한 처지다. 숙소는 쓸데없이 빈티지한 전통양식의 옷장과 의자가 있어 왠지 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방음은 얼마나 안되던지... ... 여행자 거리에 집합한 세계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타국의 이국적인 밤을 즐기는 소리는 누군가 납치되었다 갑자기 방에서 눈을 뜬대도 ‘이곳이 베트남의 시끌벅적한 여행자 거리인 것 같으니 구하러 오라’고 가족에게 몰래 전화할 수도 있을만큼 대단했다.
의자와 옷장의 기묘함 때문에 불을 다 켜놓은 상태에서 아마 2~3시는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고맙게도 이 미흡한 방음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에 소란한 소리에 부스스 눈을떠 화들짝 시계를 확인하고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행기를 한번 더 놓치는 일을 당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오토바이 부대와 함께 나는 도로를 내달려 공항으로 향한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가득 채우는 매연, 그리고 그 분주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넓은 평야와 밭들이 내 옆으로 빠르게 지나친다. 내가 묵었던 곳이, 베트남이 어떤 곳인지는 전혀 모른다. 다만 어젯밤 지나간 길과 내가 지금 보는 풍경이 너무나 다르게 평안해 보인다는 것이 다르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전적으로 베트남을 목표로 해서 여행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준비가 된 채로.
환전했던 5만원은 전부 택시비로 쓰고도 모자라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추가로 환전을 했다. 15분 거리를 일부러 돌아서 갔는지, 아니면 예약사이트의 정보가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음번에 가게된다면 왠만하면 택시는 타지말아야지 생각한다.







기묘한 분위기가 무서워 불을 환히 밝히고 잠들어야 했던 숙소



아침, 의외의 모습을 선사한 풍경, 간밤에 비가 왔는지 촉촉한 대기가 기분까지 좋게 만들었다








 
공항에서
갑자기 공항에 발이 묶여 버렸다. 나의 삶 한달 분량의 짐과 함께, 지금으로써는 나의 전 재산인 짐이므로 매우 소중하지만, 이 짐 때문에 나는 이 공간에 갇혀있다. 시간을 보내고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한다. 항공사 직원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비즈니스인으로 예상되는 양복 신사들, 다들 공항에서는 달팽이처럼 자신의 짐을 끌고간다. 각자 떠나는 목적과 기간만큼의 삶의 분량이다. 우린 집에 무엇이든지 꽉꽉채우고 싶어 하지만, 정작 여행을 갈 때는 알게 된다. 너무 많은 것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것저것 많이 챙긴 것을 후회한다. 심지어는 가져가서 한 번도 꺼내보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물건들도 허다 하므로, 여행할 때만큼은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무조건 가벼운게 최고다.
항상 삶에서도 이런 자세를 가지자 다짐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삶의 여행자가 되기는 틀렸나보다.
떠날 때는 최소한으로 떠나지만, 돌아올 때는 최대한이다. 또다시 어수선한 내 집안에 무엇인가를 보태기 위해서 잔뜩 싸 짊어지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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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체크인을 기다리며 로비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이 있었다. 딸과 엄마, 그리고 아빠. 딸은 20대 대학생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혼자 여행을 하냐며 대단하다고 내게 말했고 나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못한채 겸연쩍게 웃었다. 그리고 열쇠를 받자 수줍은 인사와 함께 내 방으로 도망쳤다

- 다음날 공항에 도착해 택시비를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커피 한 잔을 겨우 사먹을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청년은 아침도 안먹고 일찍나가는 내게 가면서 먹으라고 구운 식빵과 잼을 챙겨주어서, 그의 온정과 호의, 그리고 빵으로 잠시나마 머물었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았다.

- 공항에서 sun과 스냅샷처럼 나오는 영상통화를 한 뒤 라오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얼싸안는 극적인 상봉을 하거나 혹은 내가 멋쩍게 사과하는 장면을 떠올렸으나, 숙소에는 그녀의 짐 뿐이었다.
선의 캐리어를 보고 그토록 반가워 할 줄이야... 정작 주인은 없었다. 
 당연히 연락이 안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을 졸이며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건지,  어젯밤 해외에서 혼자 자는 잠은 무섭진 않았는지, 혹은 내게 화가 나서 복수를 하러 사라진건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방이 있으니 ... 한시간 정도 지난 후, 그녀는  미키 마우스 그림이 그려지고 귀가 달린 볼펜을 내게 건내며 너무나 밝게 시장구경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어제 마셨다는 버블티를 마시러 갔다.

- 지난 밤 선도 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유는 게스트하우스 내 바에서 들려오는 소음(여기서도 세계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과한 열정을 불살랐나보다)이 얼마나 심하던지 혼자가 아니라면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오늘 오면 '더 시끄럽게  떠들어 어제의 복수를 해주겠다' 이를 갈고 있었다고 했지만 지난밤 그들은 오늘은 또 다른 곳의 누군가를 잠못들게 하기 위해 떠났는지 조용했다.
같은 날 다른 나라(먼 타국)에서 우리는 둘다 같은 이유로 잠을 설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우리의 두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남 동을 탈탈 털어 만끽한 커피 한 잔. 베트남에서 택시비 외의 유일한 지출이었다.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챙겨준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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