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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Feb 18. 2020

사물이 건네는 말.

자동차 계기판 그리고


올해는 눈은 못 보나보다 했다.


눈이 오면 

이유 없이 누군가를  만나야만   같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꼭 밑지는 거 같다.

이런 날은 설레서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멍하니 좀 바라봐야 한다.

이럴 것 같고, 저럴 것 같은... 어쩌면 약간 우왕좌왕하지만 두근두근 설레는 그 느낌.

그것이 눈 오는 날의 마음이다.


비가 주룩주룩  오더니 

온도가 떨어지면서 눈으로 바뀌었다.

비를 좋아하는 나인데 

올해 눈이  오긴  왔나 보다.

눈이 오니까 빙글빙글 돌며 컹컹 짖는 강아지 같다.


눈이 그야말로 펑펑 온다.

작아졌다가 커졌다가 한다. 커졌다가 이내 작아진다.

눈송이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또 커졌다.

자연스럽게 서로 간격을 벌리고 떨어진다.

사뿐 떨어지다가 막 몰아쳐서 땅에 매다 꽂는다.

봄에 나비가 폴짝폴짝 날아다니듯 날리다가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내린다.

이래서  구경하고 싶었나 보다. 

시간 가는  모르겠다.


세상이 이렇게 금방 하얗게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다. 좋다.

늦어도, 실수해도 모든 것이 눈에 묻힌다.

온 세상을 덮을 정도의 요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좋다.



멀리 덕소까지 내부순환로를 타고 쭉쭉 달렸다. 매일 보던 그 자리에 눈이 소복이 쌓인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정말 새로운 세상으로 내달리는 기분이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하얗게 변해가는 걸 보니 하얗게 쇠기 시작한 내 머리카락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지면서 아리고 슬픈 느낌이다.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찻집은 따뜻했다. 다정한 벗과 함께 커피와 오미자차를 마시니 내장 깊숙이 뜨셔진다.



몇 시간 대화를 나누고 눈 구경을 하고 눈을 찍고.

어릴 때의 눈 구경이라면 열심히 눈을 맞고, 눈을 뭉치고, 뿌리고, 굴리고 했는데 이제 나의 눈 구경은 비교적 조용하다. 그래도 내 속에서는 어릴 때의 나만큼이나 발을 동동 구르고 방방 뛴다.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주섬주섬 가방과 목도리를 챙기고 외투를 입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그때 자동차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다.



주유를 하라는 것이다.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표시가 된다.

휘발유 때문에 한 번도 곤혹스러운 일을 당해보지 않은 나는 그 일이 얼마나 큰 곤혹인지 모른다. 그냥 주변인들의 경험담을 주워 들어서 조심해야지 할 뿐이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두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 표시 막대 두 개 내지는 한 개가 남으면 재깍 주유를 한다. 그런데 불이 들어온 것이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에 주유소를 발견했다.

가득 주유를 했다. 마음이 세상 편하다. 주유소를 찾을 때까지의 그 몇 분과 주유를 한 후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집까지 뿐만 아니라 며칠은 끄떡없다.



다시 또 눈이다.

눈이 세차가 내린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 되니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차 안이 하얗게 김이 서리고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히터를 켜고 창문을 내리고 뭘 해도 차 전면 유리에 튄다.



그때 워셔액을 뿌린다.

한 두 번 했는데 더 이상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아까 답답하다고 두세 번씩 뿌려댔었지.’


워셔액을 뿌릴     이상 뿌리는 습관이  나다. 주유 등에는 불이 켜지지만, 워셔액은 표시등이 없다. 워셔액이 떨어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아까  주유소에서 워셔액을 보충했겠지.  워셔액은 표시등이 없지... 온갖 생각으로 내달리다

결론을 짓는다.(사실 생각은 잠그고, 눈 구경이나 하고 싶어서다.)



인생은 이렇다.

우리에게 미리 신호를 주는 것이 있고

닥쳐야 아는 것이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워셔액 보충을 표시등으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핑계다.




인생은 미리 신호를 주는 것과,

닥쳐야 아는 

그리고 쓰잘데없이 핑계를 대는 것의 연속이다.




2020.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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