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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Feb 26. 2020

사물이 건네는 말.

유리창 그리고



가게를 열었다.


일 년 전만 해도 계획에 없던 일이다.

1층 작은 평수로 세를 얻었다.

이제 나의 하루는 가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깨어나고 저문다.



유리창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빨간 하이바를 쓴 배달원부터

블록을 맞추듯 거기 그 자리에 트럭을 세우고

택배를 내리는 아저씨.

한눈에 봐도 무거워 어깨가 자동으로 처지는 가방을 메고 가는 학생들.

바퀴 달린 작은 이동식 장바구니에

대파며 계란이며 장을 본 아주머니도 있다.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파트 베란다 쪽 나무는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와 늘 눈이 맞으니 그런 기분이 든다.



유리창은 사람들만 담는 것이 아니다.

날씨도 담는다.

비가 오는 날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비바람 부는 방향을 맞서서 걷는다.

눈이 오면 사람들의 걸음이 어쩐지 느려진다.

눈을 보면서 걸어서겠지.

아무튼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유리창은 그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유리창은 그런 면에서 정직하다.



손님이 없을 때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밖을 관찰한다.

그럼 신기하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유리창을 통해 나를 관찰한다.

우리는 서로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몇 해 전 회사를 다닐 때 가로수가 통 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에 만드는 그림자를 좋아했었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상사한테 한 소리를 들은 후에도 그 창문은 나에게 조그만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시간 내가 좋아했던 유리창이 이렇게 사람을 숨 막히게 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 가게들과는 조금 다른 조명을 쓴 소위 튀는 공간의 통 유리.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맸는지 내가 커피를 한 잔 먹어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하품을 하는 순간에도 눈이 마주쳐 머쓱하기도 했다. 밖에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가게 안에서 나는 밥을 먹는 것도 어려웠다. 이를 어쩐다.......



내가 좋아하는 맛집과 카페는

그 집만의 분위기에 따라서

 ‘맛집’의 ‘맛’이 완성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가게들은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조명이 따뜻하고, 식물이 적당히 있다.

그리고 유리창이 크다.

아 맞다. 음악이 좋다.



조명도 중요하지만,

채광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러한 것들이 한데 어울려서

사람의 마음에 조그만 구멍을 뚫는 것 같다.

함께 간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의 구멍.




한 4개월쯤 걸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무뎌지는 것 말이다.

내가 좋아하던 것이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되다니...

세상은 참 신기하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이 쪽 끝과 저 쪽 끝의 연속 같다.



나는 아직 유리가 좋다.

특히 뽀득뽀득 닦여서 거울처럼

내가 보이는 유리창이 좋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유리창이 좋은 건 아니다.

내가 바라다보는 쪽이 좋다.





2020.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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