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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Apr 02. 2020

천천히 밥, 느린 밥

느린 밥이 주는 위로

포항이 고향인 동생이 오란다.

엄마가 음식을 보내주셨단다.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

늦게 도착해서 집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명절이 떠올랐다. 전 부치는 냄새부터 시작해서 파김치, 무생채, 열무김치와 두부 부침, 빈대떡, 멸치볶음, 밥과 매콤한 돼지고기 김치찌개. 거기에 잡채까지.

엄마가 싸 보낸 스티로폼 박스엔 상추가 뒹굴고 있었다.


"엄마가 이 상추도 엄청 싱싱한 거라고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먹으래."


그 말이 왜 이렇게 다정한 메아리처럼 들리는지

나는 동생이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속에서 슬쩍 빠져나와 어느새 타지에 있는 딸을 위해 반찬을 만드는 엄마에게 가 닿았다.


엄마는 손에 손에 한 가득 장을 봤다.

우리 먹을 거라면 좀 시들한 거, 싼 거라도 괜찮지만

타지에서 홀로 밥 먹는 우리 딸 생각을 하면 싱싱해야 한다. 그것도 오래 두고두고 먹을 반찬이니까 싱싱함도 더 더 씽씽하게!


반찬 하나를 해도 그냥 후루룩 되는 법은 없다.

미리 손질하고 밑간을 해야 한다.


무생채는 무를 채치고 소금에 절여 놓아야 한다.

열무도 소금은 필수코스다.

모든 재료들은 하나하나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빼놔야 한다.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이 채소와 고기 등 식재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던가.


뭐든지 빨리빨리

내놓으라고 아우성인 이 세상에서

느린 밥,  천천히 밥은 진짜 진짜 꼭 필요하다.

그런 밥을 먹어야 사람은 속이 찬다.

느리고, 천천히 만들어지느라 세상의 에너지를 충분하게 흡수한 그런 음식 말이다.






2020. 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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