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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Jun 29. 2020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당신은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의 조용함이 좋고 책이 나에게 뭘 강요하지 않아서도 좋다.
하얀색과 검정색(글자)으로 나뉘는 그 간결함이 좋다.
무엇보다 내가 머릿속에서 엉켜있는 채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작가가 딱 눈 앞에 내놓았을 때의 반가움이란.. 아무튼 난 책을 좋아한다.
책이 오랜 시간 내 친구였고 내 신변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은 언제나 좌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중에서 또 큰 이유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글자의 서체에 따라서 느낌이 전혀 다르고 간간이 들어가 있는 그림이나 정보성의 어떤 사진을 보는 것도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런데 제일 사로잡은 건 '제목'이다. 저 제목으로 책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책을 볼 때 표지의 재질과 제목, 일러스트도 중요하다. 물론 내지의 구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행의 간격에 따라서도 다르고 페이지 넘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것이다.

간결함이 궁극의 정교 함이라고 하는데 그 간결함이 정교하게 느껴질 때 나는 탄성을 지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책이라는 작은 세계가 편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나의 독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형태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정독을 했다. 한 권을 읽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쏟았고 서문부터 에필로그까지 읽거나 다른 문학작가가 그 책을 씹어내 놓은 글까지 읽어야 다 읽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말하자면... 책이 종교에서 대중예술로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숭고했고, 경건하기까지 했던 나의 책 읽기는 이제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기 시작했고 섞고, 교차하는 방식으로 나의 책 읽기는 변했다.
조금씩 읽고, 다 읽지 않아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만은 변함없다.
그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지적재산권을 내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말해야겠다.


책은 취향이다.
책을 읽는 건 나에게 잘 맞는 취향이다.
술, 담배를 하는 것과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꼭 세상의 모든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거고 또 다른 것들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모두 하나만 강요한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이 아주 안전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생각한다.
책은 생각하는 걸 돕는다. 도울 수밖에 없다. 작가가 생각하면서 조금씩 써 내려갔기 때문에 그 속도에 얼추 맞춰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젤 중요한 부분.

인생에 있어서 질문을 던진다.
가만히 살다 보면 사는데 바빠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보다는 그저 적당히 맞추고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 나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책이다.

지금 잘 살고 있나?
행복을 느끼나?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가?


이런 모호한 질문에서부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소소한 질문까지 온갖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질문이 좋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까.

내 삶에 질문이 있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지난주 토요일에 악어책방에서 '역사가 술술술' 클래스를 진행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 중에 홍길주라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나는 생소했지만 그가 쓴 글을 마주하니 정말 딱 속이 후련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이
다만 책 읽기만 말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다만 종이에 써진 글을
읽는 것만 말하지는 않는다.
산과 물과 구름,
새와 짐승, 풀과 나무 등을 보는 것도
 모두 책을 읽는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살피는 것도 모두 책을 읽는 것이다.


홍길주, 수여방필





책을 읽는 것에서 서서히 눈과 귀로 생각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책이라는 홍길주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과 비례한 경험을 고려했을 때 책의 내용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세상을 읽기도 한다. 세상을 읽는 것이 재미있다.



추신. 결론을 이야기  했다.
누가  ' 이런 책도  읽었냐?' 깔아보듯 말해도
무시해라. 책은  속에만 있는  아니니까.
당신은 이미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 찌질이들의 이야기는 발로 뻥 차 버리면 그만이다.





2020.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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