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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Feb 22. 2021

#1 엄마를 위한 30일 글쓰기

웃는 엄마를 위하여



어제 그런 마음을 먹었다.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리 엄마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눈물을 흘리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 안 난다.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에 나는 화가 치밀었다.

며칠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정말 몸에 힘이 없는데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니까 나는 화가 났다. 미역을 먹다 말고 그냥 뛰쳐나가서 다시는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일흔이 넘어서 백발이 성성하지만 아직도 1초 만에 어린 시절의 엄마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크지 않았다. 아빠가 총살당해서 죽고 엄마는 재가한다고 나가버리는 그 어린 시절에 박제되어 있는 사람 같다. 우리 엄마를 어떻게 꺼내 올까? 나는 밥을 겨우 다 먹고 내 방에 들어왔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제비뽑기로 뽑았다면 나만 진짜 꽝을 연거푸 뽑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스스로 너무 치사했다. 그래서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소리를 꾹 참았다. 부모가 불행했다고 자녀까지 불행하라는 법은 없다. 그건 너무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엄마가 불행하면 딸은 그 불행이라는 마법에 사로잡힌다. 그 마법은 긴 긴 효력을 가진다. 그것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따위는 견주지 못할 만큼이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 힘이 든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와 아빠를 동시에 잃고 눈치꾸러기가 된 엄마가 떠오른다. 내 생각 속 엄마는 언제나 울고 있거나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 나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짐을 지는 것보다 무겁다.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면 좋을까?

예전 같으면 곰곰이 생각해 봤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뭐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수식어 따윈 필요치 않다. 그냥... 웃고 있는 고선영으로.


내가 글을 쓴대도 우리 엄마의 평생 한풀이를 해줄 수는 없을 거 같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위한 글을 하나쯤은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엄마를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할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다.

나는 엄마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렇게 적기로 했다.

나는 내 삶에 대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도깨비방망이를 내놓으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을 것이다.


“내 행복을 내놓아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내가 알고 있는 온갖 것으로 너를 저주하고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해라. 나는 지금 입술이 터지도록 이를 앙다물고 있으니.

 

 

 

 

 

 

#엄마 #엄마를위한30일글쓰기 #작가고선영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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