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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Feb 23. 2021

#2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우리는 모두 찌질이다



#2.

우리는 모두 찌질이다.

 엄마는 반찬통 안에 있는 반찬을 다시 가지런히 놓기 위해 젓가락을 휙 90도로 돌린다. 손잡이 부분으로 반찬을 집어 정리를 한다. 엄마는 밥을 먹으면서 손가락을 쪽쪽 빤다. 생선을 손으로 집어서 야무지게 발라먹는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일 때 마늘을 넣지 않고 홍합이나 조갯살이 들어간 미역국이 좋다고 한다. 미역은 미역심이 있는 것을 고르고 대부분 국자로 뜨기도 어렵게 길게 이어진다.

 엄마는 나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40년이 지났음에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 새콤하고 매콤하게 무친 전라도식 콩나물 잡채만 기억한다. 엄마는 예쁜 그릇에 담아서 주는 경우보다 그저 있는 그릇에 준다. 예전 내 기억에 한두 번이었던 것 같은데 TV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며칠 엄마는 반찬을 정성 들여 그릇 하나하나에 담아서 내줬다. 물론 며칠뿐이었지만 나는 그때 참 좋았다.

 엄마랑 밥을 먹을 때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건 ‘두부조림’ 때문이다.
콩으로 된 건 거의 좋아하는 나인데 엄마는 두부가 냉장고에 있으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부 뜨끈하게 해 줄게. 두부랑 밥 먹어.”
내가 그 반찬을 진짜 엄청 좋아하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건 엄마가 두부를 뜨거운 물에 데친다는 뜻이다. 두부를 뜨거운 물에 데치고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김장김치랑 함께 먹는 것. 나는 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음식이긴 하나 요리가 아니다. 나는 이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깜빵에서 갓 나온 출소자를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는 ‘두부조림’이다. 양파와 파, 마늘과 고춧가루 그리고 간장과 참기름이 적절하게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두부조림을 좋아한다. 그런데 엄마는 두부조림을 해 준 적이 거의 없다. 언젠가 언니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니들 말로는 그걸 말하란다.

 엄마는 내 취향을 모르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나는 그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여덟 식구를 건사하면서 엄마가 예쁜 그릇에 담아주고 자식들 한 명 한 명의 취향까지 반영한 음식을 밥상에 올리는 걸 바라는 네가 나쁜 년 아니야?”

그런 질문에 나는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가 불편한 건... 이 죄책감 때문이다. 엄마랑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엄마를 가진 모두가 그럴까? 그럴 거 같지는 않다.

하아... 진짜 두부조림이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냐.

이 정도쯤까지 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네가 유별난 거야.”


 어린 날의 우리 엄마를 떠올린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선택도 아닌 아빠의 가치관으로 홀로 고아가 되어 버린 우리 엄마.
가엾다. 나는 엄마에게 두부조림으로 화가 나던 마음을 슬그머니 접는다.

 그러다가 또 생각한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다.
절반은 종교에 빼앗기고 또 절반은 어린 시절 겪었던 지독한 트라우마에 빼앗긴 우리 엄마가 아닌. 햇살을 충분히 받고 기분 좋은 엄마의 사랑을 우선순위 한참 밀리는 넷째 딸로가 아니라 그냥 고선영으로 온전히, 오롯이 받고 싶었던 거다.

 그 맘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두부조림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엄마를 위한 글쓰기일까? 이틀인데 벌써 큰 문제에 봉착했다.
아마도 30일쯤 되었을 땐 분명 우리 엄마보다 나를 위한 글들이 주룩주룩 갈겨져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로 여김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은 존경스럽다. 나는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있다.
나는 성인도 안 되고 도인도 아니고 맘을 능수능란하게 제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아직도 질질 짜고,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못 자고,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싸매고 있는 찌질이다.

 방금 풋 웃음이 난다. 찌질이라니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해진다.
그 위대한 세종대왕도 어쩌면 고기를 안 주면 삐지는 찌질이었을지도 모르고
이순신 장군도 어릴 때 달리기에서 지면 분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찌질이다. 아침마다 엄마를 떠올리고 글을 쓴다. 이 일이 나에게 줄 해방감을 기대하며 쓴다.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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