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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Feb 24. 2021

#3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산부인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3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내가 밥을 먹었는지 검사 결과는 어떤지 엄마는 묻고 언제나처럼 엄마 용건의 답만 듣고 내가 말하는 중에 끊었다. 한 번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하혈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하혈을 한 번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달여 동안 하혈을 한 적은 없다.
나는 좀 놀랐지만 또 짜증을 내고 있다. 놀고 싶고, 일하고 싶고 해야 할 것이 많은데 이 시점에 하혈이라니. 엄마는 며칠째 나에게 미역국을 준다. 애라도 낳은 것처럼 말이다.

병원에서는 지난주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래서 다른 병원도 가봐야 하는 건가.
내가 지난주에 바보라도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나는 내 자궁에 대한 궁금증을 조목조목 물어보았다. 난소와 난자, 자궁, 질 정도의 지식밖에 없는 내가 지난주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당황했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고 좀 당황스럽고 내 인생에서 타이밍이 빗나간 것 같은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마당에도 나는 이건 글감이라고 생각했으니 약간 병적인 구석이 있나 싶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만 그래도 그렇지.

오늘 병원에서 초음파로 검사한 내 자궁을 봤는데 지난주에는 성인 남성의 주먹 크기만큼 부어있다고 했다. 그건 정상의 두 배라고. 그렇게 작은 속에 내내 내가 담겼었다는 사실이 이질적인 금속과 맞닿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게 내 집이 작았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그 속에서 엄마가 나를 열 달 품었다니 엄마는 매 순간 나를 느꼈을까?(이 순간에도 인간의 임신기간은 열 달이 맞나?를 의심하는 나.)

나는 엄마와 나를 한 개체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주 산부인과에 갔을 때부터 나는 엄마와 따로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엄마와 나는 하나였다. 이상한 기분이다.
나는 내 자궁에 누군가를 품어본 적이 없다. 그 일은 어쩌면 이번 생에는 경험하지 못할 일일지도 모른다.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의 가장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엄마가 되는 일일까? 나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해 상상해 본다.

몸에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몹시 춥고 졸리다. 이러다가 내 몸에 피가 남아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놀러 가야 하는데...’ 생각하는 게 나라서 나는 좀 피식 웃게 된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좀 기가 막히고 또 황당하다.

나라는 실체가 엄마의 배 속에서 자라는 상상을 한다. 어떤 영상에서 봤는데 손가락이 투명했다가 점점 불투명해졌다. 투명했던 내 몸에 피가 돌고 세포가 돌고 조직이 단단해지고...
‘투명한 나’는 처음 상상한 것은 아니다. 내 꿈에서도 강렬하게 나왔다. 투명한 나를 상상해본다. 책방에서 한 없이 흐느적거리고 투명해지는 나. 흘러서 컵에 담기고 테이블 위에서 바닥으로 책장에서 아래 책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나.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엄마와 거의 하나였을 때 내가 자라는 그 날 그 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렵고, 걱정되고, 기쁘고,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짜증 나고, 힘들고 온갖 생각을 했겠지.
그런 엄마를 떠올린다. 그 엄마와 하나였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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