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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Mar 30. 2021

B대면 데이트 | 가장 좋아하는 꽃

대화 #1

대화


#1 #가장좋아하는꽃 #대화 #B대면데이트


제일 좋아하는 게 목련이라구요?

왜죠?


  그냥 아쌀하잖아요. 짧게 폈다가 지잖아요. 그것이 좀 너무 물고 늘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쿨해보인달까요? 게다가 꽃잎이 모두 하늘을 보고 있어요.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고 있을 때 어쩐지 너무 간절한 느낌이라서 꼭 보게 되죠. 뭔가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 들어요. 목련은 그래요. 벚꽃은 자잘하게 흩날리잖아요. 그런데 목련은 그냥 떨어지면 아주 처절하죠. 가차 없어요. 뭐랄까... 좀 독립투사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약간의 비장미가 있어요. 벚꽃이 좀 로맨틱한 느낌이라면 목련은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이별이 떠올라요. 그치만 목련이 좋은 이유는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어릴 때... 초등학교 몇학년 때더라. 학교 백일장에서 운동장에 편 목련을 그렸어요. 그렸으니까 색칠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목련색깔은 물감에 없는거예요. 그래서 어쨌게요? 흰색을 처바를 수도 있었겠지만 전 그러지 않았어요. 그럴 수가 있나요? 흰색 물감을 우선 짰어요. 아래에 팔레트가 있었는지 책받침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흰색 물감을 짜던 손만은 기억이 나요. 흰색 물감은 너무 차갑고 죽은 느낌이었어요. 물감을 한 번 들여다보고 목련을 또 한참 바라봤어요. 도무지 같은 색이라고 우길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흰색 물감에 아주 조금 노란색을 짰어요. 살짝 섞었는데 조금 낫더군요. 다시 목련을 바라봤는데 전혀 비슷하지 않았어요. 약간 약이 오르더군요. 저까짓 목련쯤이야... 라고 우습게 본 것을 비웃기라고 하듯 목련은 전혀 다른 색깔이었어요. 빨간색을 짰어요. 붓 끝에 살짝 묻혀서 흰색과 노란색을 섞은 물감을 천천히 뭉갰어요. 그래요. 바로 이런 색이죠. 전 너무 기뻤어요. 그랬는데 고개를 쳐드니 웬걸요. 목련은 또 나를 보고 비웃음을 던지더군요. 정말 황당했어요. 이쯤해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쩐지 마음에서 그냥 그쯤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녹색을 아주 소량 섞었어요. 좀 많이 들어갔는지 아까와 같은 따듯한 느낌이 사라지더군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죠. 그때 다시 흰색을 섞고 노란색을 섞고 다시 붉은 색을 섞고... 그 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치만 이거 하나는 기억나요. 그 날 전 완전히 그 일에 몰입했었어요. 마지막에 자연과 거의 흡사한 목련 색깔을 아주 조금 얻었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목련은 저에게 이런 꽃이에요. 저에게 처음으로 몰입과 성취감을 선사한 꽃이죠. 그러니 제가 좋아할 수 밖에요. 전 목련을 항상 기다려요. 목련을 몹시 기다리다가 목이 뎅강 부러지듯 져 버리면 일, 이 초쯤 아쉬워하고 또 내년 봄을 기다린답니다. 목련은 아주 묘하죠. 전 목련을 사랑해요. 목련은 아주 도도한 여자같아요. 제가 뭘 해준다 해도 제게 마음을 주지 않아요. 게다가 엄청나게 강인한걸요. 전 목련의 그런 면이 좋아요. 목련 이야기는 2박 3일도 할 수 있겠어요. 하하하 그건 뻥이에요. 그치만 목련을 진짜 좋아해요. 목련은 너무 근사해요. 특히 겨울눈일 때 정말 끝내주는 거 알아요? 목련이 피는 계절이 오니까 마른 나무에 수액이 돌 듯 내 몸 곳곳에도 혈액이 도는 기분이에요. 목련 이야기를 너무 길게 주절거려서 화나신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봐주세요. 뭐 하나에 폭 빠질 수 있잖아요.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게 있지 않나요? 그러니 저런 인간도 있구나 하고 봐주세요. 그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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