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영성장에세이
엄마는 반찬통 안에 있는 반찬을 정리하면서 젓가락을 휙 90도로 돌린다. 손잡이 부분으로 반찬을 집어 정리를 한다. 엄마는 밥을 먹으면서 종종 손가락을 쪽쪽 빤다. 생선을 손으로 집어서 야무지게 발라먹는다. 미역국을 끓일 때 마늘을 넣지 않고 홍합이나 조갯살이 들어간 미역국을 끓인다. 미역은 미역 심이 있는 것을 고르고 대부분 국자로 뜨기도 어렵게 길게 이어진다.
엄마는 나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40년이 지났음에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 새콤하고 매콤하게 무친 콩나물 잡채만 기억한다. 엄마는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줄 때 보다 그저 있는 그릇에 준다. 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릇이다. 한두 번 좀 달랐던 적도 있다. TV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며칠 엄마는 반찬을 그릇 하나하나에 정성 들여 담아서 내줬다. 물론 며칠뿐이었지만 그때 나는 참 좋았다. 잘 사는 집 귀한 아이가 된 기분.
엄마랑 밥을 먹을 때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건 ‘두부조림’ 이다. 나는 콩으로 된 건 거의 좋아한다. 엄마는 두부가 냉장고에 있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두부 뜨끈하게 해 줄게. 두부랑 밥 먹어.” 내가 그 반찬을 진짜 엄청나게 좋아하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건 엄마가 두부를 뜨거운 물에 데치는 걸 말한다. 두부를 뜨거운 물에 데치고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김장김치랑 함께 먹는 것. 나는 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음식이긴 하나 요리가 아니다. 이 음식을 먹을 때면 항상 감방에서 갓 나온 출소자를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 요리는 ‘두부조림’이다. 양파와 파, 마늘과 고춧가루 그리고 간장과 참기름이 적절하게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두부조림을 좋아한다. 그런데 엄마는 두부조림을 해 준 적이 거의 없다. 언젠가 언니들에게 불만을 이야기 했더니 내가 원하는 걸 직접 말하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게... 왜 나는 그동안 말을 안 했을까?’
엄마는 내 취향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또 다른 목소리는 이런 질문을 한다. ‘여덟 식구를 건사하면서 예쁜 그릇에 담아주고 자식들 한 명 한 명의 취향까지 반영한 음식을 밥상에 올려야 하니? 그런 것을 바라는 네가 나쁜 년 아니야?’ 나는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가 불편한 건 이 죄책감 때문이다. 엄마랑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엄마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이 만들어 낸 것. 휴우…. 진짜 두부조림이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냐. 이 정도 생각에까지 미치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네가 유별난 거야.”
어린 날의 우리 엄마를 떠올린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홀로 고아가 되어 버린 우리 엄마. 가엾다. 두부조림으로 화가 나던 마음을 슬그머니 접는다. 그러다가 또 생각한다. 반론이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다. 절반은 종교에 빼앗기고 또 절반은 어린 시절 겪었던 지독한 트라우마에 빼앗긴 메마른 엄마가 아닌. 언제나 쪼개고 또 쪼개서 허기진 넷째 딸이 아닌. 햇살을 충분히 받고 기분 좋은 엄마의 사랑을 그냥 고선영으로 온전히, 오롯이 받고 싶었던 거다. 그 맘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두부조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을 나는 존경한다. 아직 내게는 그런 마음이 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있다. 나는 성인도 아니고 도인도 못되고 맘을 능수능란하게 제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직도 질질 짜고, 억울하고 분하면 잠을 못 자고,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싸매고 있는 찌질이다. 방금 쿡 웃음이 난다. 찌질이라니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편해진다. 그 위대한 세종대왕도 어쩌면 고기를 안 준다고 삐지는 찌질이였을지 모르고, 그 위대한 이순신 장군도 어릴 때 달리기에서 지면 분해서 두 발을 구르며 울었는지도 모른다. 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찌질이다. 그러니 괜찮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건 두. 부. 조. 림 이야. 알았지?”
| 엄마의 인터뷰 2
우리 할머니께서 내가 태어난지 20개월 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어 할머니께서 꼭 수수팥떡을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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