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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녀_OO이 싫어] 예민, 불안, 민감이

by 읽쓴이

나는 예민한 편이고, 자주 불안하며 많은 것에 민감하다.


생수병이 콰직 하는 소리에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고, 귀를 때리는 스포츠카의 굉음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귀가 아픈 걸 넘어, 짜증이 따라온다. 집에서도 샤워하다가 현관문 소리가 난 것 같아 불안할 때가 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소리가 났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어 동거인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한다. 계단을 내려갈 땐 발이 가방 끈에 걸려 넘어지는 상상을 하고, 늦은 밤 현관문을 닫는 찰나엔 누군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진 않을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타인과 대화할 때 혹여나 말실수하진 않을지 걱정하고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선 나의 대화를 복기한다. 그래서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고, 그런 실수는 특히 헛말을 해야 하는 관계에서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주로 편안하지 않은 관계에서 말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헛말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카페나 지하철에서는 크게 떠드는 사람을 피해 자리를 옮긴다. 전화 통화를 크게 한다거나, 너무 크게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피로해진다. 특히 화를 내며 통화하는 소리를 들을 때 더욱 그렇다. 또 음악 소리가 너무 큰 카페나 음식점은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외출하려고 집을 나서기 전에는 여러 가지를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가스 밸브는 잠겨있는지, 선풍기와 헤어드라이어의 코드는 뽑혀있는지, 에어컨은 꺼져있는지. 비가 오는 날이면 세탁실 창문이 비가 새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닫혀있는지. 하지만 막상 외출한 뒤엔, 확인한 것들을 또 의심한다. 제대로 잠갔던가? 코드는 뽑았던가? 왠지 코드를 뽑지 않고 나온 것 같은데….. 하고 강한 의심이 들 때 다시 집으로 가서 확인해 보면 코드는 허무하게도 덜렁. 빠져있는 걸 확인한다. 허무함이 치민다. 반대로 전혀 아무런 걱정과 의심 없이. 해맑게 하루를 잘 보내고, 집에 돌아온 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에어컨이 켜져 있다던가 한다. 이 무슨.


예민함과 불안이 극도로 치달을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다. 그럴 땐 자려고 밤에 눈을 감으면 캄캄한 머릿속으로 무서운 형체가 떠오른다. 귀신같기도 하고 괴물 같기도 하고 그런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눈을 감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수면 유튜브를 켜 놓고 자길 여러 번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어떨 땐 그 수면 유튜브에서 나오는 소리에 가위를 눌리기도 한다. 어쩌라고 내 몸아.


건강에도 예민한 편이다. 얼마 전엔 달리기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는데 다리 부근에 오돌토돌한 알맹이들이 올라와 있었다. 검색해 보니 수정땀띠라는 것이란다. 몸을 차게 하고 보습을 잘하면 금방 들어간다고 쓰여있었지만 어쩐지 걱정이 되어 20분을 내리 [수정땀띠]에 대해 알아보고 오후 내내 다리를 어루만지며 들어갔는지 체크했다. 피곤하다.


이건 내 선천적인 성향일까? 아니면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일까. 동동거리는 마음이, 작은 소리에도 확 쪼글쪼글해지는 예민함과 불안함. 높은 민감도가 내 콤플렉스다. 대범하고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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