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오늘도 너는 맨 앞줄에 앉아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네가 하는 말들, 지겹도록 들어서 다 알고 있다.
“내가 못 할거 같은 지문이 나오면 어쩌지?”
“갑자기 내레이션을 시키면 어떡하지?”라는 말에서 시작해서
결국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여기서 떨어지는 걸까?”과 같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발전하는 너.
나의 두려움은 2009년 12월 7일 ‘KBS 8시 저녁 뉴스’의 한 꼭지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제목은 <개성 있는 목소리 다 모여라!>였다.
그 안에서 나는 호들갑스럽게 벌벌 떠는 여성 역할을 맡았다.
(링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006143)
지금은 KBS성우 공채 시험이 3차까지지만,
2009년에는 시험이 2차까지였다.
2차에서 연기와 면접을 한꺼번에 보는 거다.
1차 시험 문제는
각 문항마다 5줄 정도의 짧은 문장으로 끝났지만,
2차에서는 문장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그 시험에서
내 불안감을 씹어먹을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오답노트로 파고들던 작품이 대본에 나온 것이다.
원문의 전체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입에 익은 단어와 리듬에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아줌마’의 한풀이 대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부산 사투리였는데, 표준어로 바뀌어 있었다.
이 대본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고민할 시간은 사치였다.
대본은 빠르게 수거됐고, 나는 덤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산 출신이고, 이미 이 대본을 몇 번 연습을 했었다.
해 볼 만한 도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차차!
첫 문장을 내뱉자 머리와 혀가 동시에 꼬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력되는 문장은 표준어인데, 출력을 사투리로 하려니 어색했던 것이다.
연기하면서도 과연 이게 맞는가라는 잡념이 들었던 거 같다.
연기 도중에 혀도 꼬였던 것 같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멈추지 않고 연기를 이어갔다.
눈물도 찔끔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은커녕 침도 말라버려서 입 안이 모래알 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기를 마치고 심사위원이
“왜 사투리로 연기했는가?”를 물어보는데
순간, 녹음실부스 공간이 넓어지고 높아지더니,
시험관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원작도 들어봤고, 부산사람이라 자신 있었다.”라고
전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던 거 같다.
심장 소리가 마이크에 먼저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력서에 적어놓은 질문들이 몇 가지 오고 갔다.
모두 다 똑 부러지게 대답한 건 없었다.
‘망했다’란는 단어가
굵은 글씨체로
천장에서 머리 위로
와르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졌다.
“그만 나가보라”는 말이
“넌 떨어졌다”라는 말로 들렸다.
바짓가랑이를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용기를 쥐어짰다.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라며
준비해 온 부채를 더듬거리며 집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민요 한 자락이라도 하려고 했었다.)
나는 잔뜩 오그라들어서 터덜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우울한 목소리로
선생님과 부모님께 면접소식을 전했던 거 같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전히 나와 함께하는 불안감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날 마이크 앞에서 불안감을 떨친 것은
고민이 아니라 결국 행동이었던 것 같다.
사투리를 고른 것도,
혀가 꼬여도 멈추지 않은 것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도.
덕분에 12월 7일,
나는 백화점으로 출근하는 길에서
합격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불안감과의 싸움에서
항상 내가 이길 수는 없지만,
요즘의 나도
그때처럼 "그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