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녹음을 하려고 하면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숨 쉬는 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고나 할까.
연기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내레이션을 시작하면 오독이 잦고,
목소리가 금세 잠겨버리곤 했다.
동기들은 대부분 여러 공채 시험에서 최종까지 간 실력자이거나,
연극 무대와 녹음 경험이 풍부한 준베테랑들이었다.
나처럼 녹음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동기들이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하며 조언해주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속 1년 차가 끝날 때쯤,
3 Radio의 <오늘의 신문>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1시간 동안
그날의 주요 신문 기사를 읽고, 음악을 들려주는 생방송이었다.
부담감은 컸지만 거부권은 없었다.
2시 반이나 3시 정도 되면 정리된 신문 스크립트가 나온다.
그럼 휴게실에 앉아서
신문기사에 나오는 단어들의 장단음을 정리하고, 띄어 읽을 곳을 체크한다.
그리고 좀 더 유려하게 들리도록
호흡을 어디서 끊고, 붙일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정독하고 나면
어느새 40분 정도는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이후는 눈에, 입에 익도록 반복해서 읽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해야 완벽해질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항상 시간이 모자랐다.
거의 2시간 정도를 연습하고 방송하는데도,
나는 왜 그리도 더듬어 버리는지.
속상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하루는 너무 많이 틀렸는데, 다음 곡이 “정신 차려, 이 친구야”였다.
그 방송을 들은 선배님이 “노래랑 찰떡이었다”라고 문자를 보내왔을 때,
정말 부끄러워 몸이 콩벌레가 된 거 같았다.
그렇게 하루 두 시간씩, 주 5일, 1년 가까이 읽었다.
생방송 시간까지 합치면 3시간, 1년이면 약 총 180시간 정도를 읽었다.
그때는 실력이 늘었다는 실감을 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분명 변화가 있었다.
긴급 속보가 쏟아져 들어오던 날,
긴장감으로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오독 없이 차분히 읽어 내려간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NG 없이 정확하게 읽어 내려간 한 프로그램에서
“너 많이 늘었다.”라는 칭찬을 동기에게서 들었을 때의
그 뿌듯함도 잊을 수 없다.
워낙 잘하는 친구였기에 그 말이 더욱 달았다.
그때 또 깨달았다.
목소리와 낭독의 기술은 단기간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 쌓인 시간이
내 발성과 호흡, 기술까지 바꿔 놓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지금 “오늘의 na. (내레이션)”이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성우 지망생뿐 아니라 낭독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규칙은 단순하다.
하루 1분, 글을 낭독해 단체방에 올리는 것.
하루 1분이라고 해도 그 준비과정에서 5~10분은 자연스레 연습하게 되고,
1년이면 수백 분의 낭독이 쌓이게 된다.
바쁘고 지친 하루 속에서 2~3시간을 꾸준히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1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1분의 습관은,
낭독을 잘하고 싶어 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목소리는 하루 1분의 습관에서 자랄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힘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