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맥주 코너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저녁은 시댁에서 종종 얻어먹는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대형마트에서 장보는 날이 많지 않더라.
캠핑 가기 전날 장을 볼 때나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에 대형마트를 들르곤 한다.
사야 할 것을 꼼꼼히 체크하고 장을 보다가,
그곳을 지나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엄청난 여유를 부리고 싶어 지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맥주가 나왔을까?'
맥주마다 추억을 달고 있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리저리 맥주를 구경하다,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고 그러다 보면 맥주만 몇만 원이 돼버린다.
배가 불러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 일단 내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하다.
언제든 시원한 냉장고에서 골라서 마실수 있어야 하니까.
나는 맥주를 고를 때 나름 두 가지로 부류 해서 카트에 담는다.
하나는 추억의 맛.
또 하나는 상상의 맛.
첫 번째는 내가 과거 해외여행 시 먹어봤던 것 중에서 그 날 그날 꽂히는 것으로 담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Budice
22살 때 미국 여행 시 만난 맥주였다.
고등학교 동창 2명과 함께 한 여행이었는데, 나만 한국에서 건너가고 두 명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포틀랜드, 한 친구는 보스턴.
우린 각자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첫 일정을 시작하였다.
샌프란시스코, LA, 라스베이거스, 워싱턴 DC, 보스턴, 뉴욕, 포틀랜드의 일정이었다.
버드 아이스를 어디서 만났냐고?
바로 워싱턴 DC에서 버드아이스를 만났다.
워싱턴 DC는 6시면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여 저녁도 빨리빨리 먹고 맥주를 사서 털레털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이렇게 문을 빨리 닫으면 긴긴밤 뭐하고 놀지?'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고른 맥주는 버드아이스였고 6병을 사서 숙소로 걸었다.
한 사람당 두병이면 되겠지 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큰 실수였다.
맥주가 어찌 그리 시원하고 깔끔하고 청량하지?
어? 음?
하다가 금세 비우고서는,
조금 더 사서 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버드아이스를 넉넉히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역시 맥주 앞에서 겸손하게 쇼핑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가보고 싶은 나라의 맥주를 골라본다.
그곳에 가서 마시는 상상을 하며 즐겁게 담는다.
아직 가본 곳보다 못 가본 곳들이 훨씬 더 많으므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다.
'어느 나라 맥주를 마셔볼까나?'
그러다 하와이 맥주나 발리 맥주처럼 예쁜걸 카트에 담는다.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데 맥주 맛도 내 스타일이면, 거의 여행을 온 기분을 느끼고야 만다.
이 얼마나 저렴하게 떠나는 여행이란 말인가.
그렇게 사서 생각보다 별로네, 하며 다 먹지 못한 맥주가 많지만.
그 버릇은 도무지 남에게 넘겨줄 수가 없다.
하나 덧붙이자면, 에디션이 중요하다고 그 앞에서 또 기웃기웃.
그러다 기어이 하나 사고 만다.
"이건 평소에도 컵으로 쓰면 되지 뭐"
그래서 평소에도 맥주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차도 끓여 마시곤 한다.
내가 애정 하는 브랜드의 컵을 만났을 때는 하나쯤 사주는 것이 예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