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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Feb 04. 2021

아이들의 감각과 재능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을 한 지 15년이 넘었다.

대게 7세 이전부터 나와 함께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할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깜짝깜짝 놀라버린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배우는 순간이 무수히 많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특히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더욱이 자신의 주관을 갖되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 물론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동일시되는 순간이 있고, 아이들 통해 미처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7살 홍채은 친구가 멜로디를 보고 왼손 코드를 만들 때 있었던 일이다.

C 코드, F 코드, G 코드, G7 코드 등 잘 적어 나가다가 어느 순간 "O"를 적는 것이다.


"채은아 O는 뭐야? 잘 못 적은 거야?" 

"선생님 O 코드예요."

"O 코드라고는 없는데?"

"제가 만든 코드예요!"

"어머, 정말 어떤 코드야? 한 번 연주해 줄래?"

"네. 그런데 O 코드는 제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달라져요. 제가 치고 싶은 코드를 마음대로 치는 코드니 까요."


너무 기발했다. 채은이 덕분에 나도 O 코드를 배웠다.

내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은 자신의 악보의 멜로디를 보고 스스로 왼손 코드를 정해서 적고 연주를 하는데, 한 번 적은 코드는 계속 그 코드가 되어 연주를 한다.

오늘도 내일도 한 달 뒤에 연주해도 변치 않는 약속 같은 거다.

그러나 O 코드는 내가 연주하는 날 내 느낌에 따라 기분에 따라 코드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유용하고 자유로운가.

채은이와 수업할 때마다 기발한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해서 나는 늘 기대가 된다.




내가 동요 작곡을 시작하고 난 후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원장님께서는 재능이 참 많으신 거 같아요"


사실 한 우물을 오랜 기간 파다 보니 그 관련 일들을 잘하게 되고 전문가가 되었다.

나이 마흔 다 되어가는 나도 '재능 있다'는 소리를 꽤 자주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재능 덩어리다.

그 재능을 잘 키워나갈 수 있게 엄마 아빠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힘을 복 돋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란 것이 가지고 있더라도 갈고닦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또 반대로 큰 재능은 없었는데 내가 좋아서 깊이 파고들어 오랜 시간 열정을 다 하다 보면

재능이란 이름으로 빛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린 TV에 나오는 '재능 있는 아이들' 몇 명을 보고서는 너무 쉽게 우리 아이와 비교하거나,

나도 모르게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런 방송을 보고 나서 엄마들을 꼭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어제 TV 보셨어요? 그 아이는 8살인데 어떻게 그렇게 피아노를 잘 쳐요?

타고난 거죠? 우리 아이는 안 되겠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상해지고 만다.

TV에 나온 그 아이가 재능이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재능이 있어서 아무런 노력 없이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가 하루에 적어도 6시간 이상은 꾸준히 매일 레슨 받고 연습을 하고 갈고닦은 실력이다.

그 이면의 노력이 90% 이상일 텐데 그 이야기는 쏙 빠지고, 8살, 잘한다, 재능만 가지고 한 문장이 조합이 되어 말로 나와버린다.

엄마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버리면, 자신의 아이는 '재능이 없다'는 걸로 확정 지어 버리는 것 같아서 괜히 혼자 씁쓸해지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작곡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곡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곡을 쓰고 싶을 때는 언제든 피아노에 앉아서 곡을 적을 수 있고,

그 노래를 아이들이 불러주고 좋아해 준다.

그래서 나는 내 재능으로 삶의 질이 더 높아졌고, 자아실현을 하며 살고 있기에,

그 재능에 늘 감사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재능은 어린 시절에 발견되지 못했다.

작곡은 30살이 넘어서 처음 시작했고, 재능이라고 스스로 인지 한 건 34살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나는 재능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커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재능이 있는지 어린 시절에 파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재능은 모든 아이들에게 있지만 잘 드러나는 친구도 있고, 저기 깊숙이 박혀 있어서 누군가가 혹은 커서 스스로 발견해서 캐내어 줘야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감각도 재능도 모두 가지고 있다.

어느 분야에 숨어 있는지, 또한 빨리 찾든 늦게 찾든 꾸준히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도와줄 일은 끝까지 아이를 믿고, 내 욕심이 아닌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되도록 깊이 들여다보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믿음과 지지가 있다면 언젠가는 그 재능이 빛나는 날이 분명히 온다.

동요작곡가 김성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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