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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Feb 03. 2021

피아노 언제쯤 사주면 좋을까?

내가 9살인가 10살 때, 아주 결정적이고 기쁜 순간이 있었다.

그 나이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맛보며 몇 달 동안 참으로 행복했었다.

과자를 사 먹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문방구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다 시덥잖은 물건을 사지도 않고,

그 관행을 무너뜨리며 바로 집으로 직행하곤 했다.


그 행복의 전말은 이러했다.

지금의 기억으로는 7살 후반쯤에 처음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된 거 걷다.

나는 5층짜리 빌라 2층에 살았는데, 집에서 나와서 길 따라 쭉 직진하다가 우회전 한 번,

다시 걸어가다 갈림길이 나오면 좌회전을 한 번 하고 쭉 걸어가면 피아노 학원이 나왔다.

그 당시 학원에는 언니들이 많았고 그 틈에 껴서 피아노를 쳤다.

언니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으므로 기다리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마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았고, 그렇다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피아노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1년 2년 배우다 보니, 옆 통로 사는 언니가 피아노를 샀다는 자랑을 듣고,

앞동에 사는 누군가가 또 피아노를 샀다고 했다.

학원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피아노를 집에서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니.

그들을 참으로 부러워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아빠의 엄마로 친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성은이 뭐 갖고 싶은 거 없나?"


그 질문에 나는 냉큼 대답해 버렸다.


"할매, 나 피아노 사고 싶어."


"그거는 얼마나 하노?"


그때부터 내 두 눈이 반짝이며 할머니에게 무한 사랑이 생겼다.

(내 밑에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은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다.

그러므로 외가, 친가 할 것 없이 양쪽 어르신들은 남동생을 극진히 이뻐하고 내 눈에는 남동생만 잘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차별을 받고 자랐다.)

피아노를 사줄 때까지 할머니를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아주 열심히 재롱을 부렸더랬다.

웬일인지 진짜로 사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하루하루 꿈을 꾸며 더 행복하게 피아노와 사랑에 빠졌다.




"원장님 피아노 언제 사주면 좋을까요?


아마 우리 엄마도 나의 피아노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나도, 많은 엄마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Best 3에 들어간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조금 더 있다가 사주세요. 아이가 정말로 원할 때, 간절히 원할 때 사주시면 됩니다."


그렇다. 엄마가 사주고 싶을 때는 엄마의 욕심이 들어간 시기다.


'피아노 좀 더 쳤으면, 집에 사주면 더 자주 치려나?'


이런 생각, 마음에 사주면 괜히 아이만 더 닦달하게 된다.

그런 점들이 아이가 피아노와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아이가 원할 때는 그것도 간절히 원할 때는 정말 관심이 있고 좋아서 가까이 두고 싶을 때인 것 것이다.

그때 사줘야지 더 애착도 가지고 오랜 시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짜 취미가 될 가능성이 한치수 높아진다고 보면 된다.

애나 어른이나 누가 시켜서 하는 건 큰 도움 안되고 의미가 없다.

나 스스로가 좋아서 관심 있어서 깊게 오랜 시간 연마하다 보면 못할 수가 없고,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께서 선물로 사주신 피아노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간절히 원했을 때 받은 그 선물은 음악과 더 깊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저 내가 좋아서 피아노 뚜껑을 자주 열고 앉아서 뚱땅뚱땅 치곤 했다.

30년 가까이 된 피아노를 가지고 이제는 내 자아실현(작곡활동)과 더불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간절히 원하는 그때가 피아노를 사줄 가장 적절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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