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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Mar 25. 2021

라면을 잘 끓이는 여자

"여보 라면 두 개만 끓여줘!"


남편은 종종 내게 라면을 부탁한다. 

나는 내 몸이 피곤한 날에도 라면 부탁을 들어주고야 마는데 그야 물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끓인 라면을 신랑에게 내어주고 한입만 찬스를 쓰며 아주 맛깔나게 뺏어먹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그야 말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 좋고 나좋고'다. 

부부 사이가 더욱 돈 득 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라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국물이 있는 라면과, 비벼먹는 라면, 짜장라면,  스파게티면, 볶음면 등등

면 종류를 기가 막히게 맛있게 끓여내는 여자랑 사는 건 어떨까?


결혼을 한 지 8년 차다. 요리수업을 따로 받은 적도 없고, 사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건 자연스레 남편의 몫이었는데, 라면만큼은 내가 끓였다.

다른 건 몰라도 라면은 자신 있게 끓일 수 있고, 내가 객관적인 판단으로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적당한 면발 삶기와 국물로 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빠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엄마도 같이 바빠졌다.

엄마는 아빠 공장에 같이 출근해서 밥을 챙겨드리고 이전 저런 잡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집에서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날이 많았는데,

아빠가 안성탕면 한 박스와 짜파게티 한 박스를 베란다에 내려놓았다.

그때부터 내 라면 요리 실력을 닦아나갈 수 있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는데,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만 가니 몇 년을 일주일에 5일 정도를 라면을 끓여먹었다.

내 라면 실력이 연마되고 그 실력을 평생 써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남이 끓여주는 라면은 거의 다 맛있다고 하지만, 사실 아닌 경우도 있지 않은가.

라면을 못 끓이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들에게 라면을 부탁하면 너무 싱겁거나 너무 퍼지거나, 혹은 너무 짜거나. 남이 끓여주더라도 저 세 가지는 맛이 없는 것이다.

라면은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각자의 좋아하는 취향과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설익은 면을 좋아하거나, 짜박한 국물을 좋아하거나, 적당하게 읽힌 걸 좋아한다거나, 불은면을 선호하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하다.

나는 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맞춰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면을 잘 끓이는 것처럼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랜 시간 내가 해 오던 일은 실력이 쌓이고 자신감이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걸 긴 시간 연마해서 잘하게 되는 게 최고인 듯하다.

취미를 깊게 공부해 나가며, 시간을 쌓아 가다 보면 준전문가 수준이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전문가만큼 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라면처럼 내가 좋아서 몇 년이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

그 부분에 대해 인생을 살면서 깊게 고민해보고 찾아나가는 건 어떨까?

10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인생에 회사 다니며 찌들어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일지라도 나만의 기쁨을 찾고 돌파구를 찾아서 더 성숙하고 성장하는 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나도 서른 즈음 내가 좋아하는걸 하나 더 찾았는데 그게 바로 '작곡'이었다.

그냥 좋아서 재미있어서 시작하게 된 작곡이 8년째다.

평생을 취미로 작곡하며 살고 싶어서,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을 때마다 자유롭게 해 나가도록 했다.

전문 작곡가도 아니고 작곡으로 먹고사는 건 아니니까.

 '곡을 의뢰'받아서 돈을 벌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다.

그런데 한 가지를 취미로 오랜 시간 해오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전문가로 바라봐준다.

오랜 시간 취미처럼 실력을 갈고닦아 오다 보니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자꾸만 나의 창작물이 쌓여만 간다. 그러다 보니 돈은 따라서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아 오랜 시간 함께 해나가는 것.

생각보다 행복감도 잔잔히 자주 밀려오고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철학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듯하다.


라면을 잘 끓이는 그 여자가 작곡도 잘한다고 하던데.

이참에 라면에 대한 곡도 한곡 써봐야겠군.

에헤라 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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