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일요일과 다를 것 없는 저녁. 거실에서 가족들이 티브이를 크게 틀어놓고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내 몸은 쉬이 지치고 피곤함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웬만해서는 형광등을 켜지 않는 내 방은 침대 옆 작은 검은색 등과 책상 위의 또 다른 작은 하얀 등, 그리고 한 뼘 남짓한 흰색 캔들 워머의 등이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며, 온풍기가 뿜어내는 백색소음과 따뜻한 공기가 뒤엉키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 스피커에서 나오는 히사이시 조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피아노 연주로 들으며, 일요일 초저녁에 선잠이 들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매트리스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면서, 나를 둘러싼 인물들이 연못의 연꽃처럼 부유하면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처럼 천천히 내 곁을 떠나갔다.
나는 그들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물 위를 유영하면서 그들을 지켜봤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 상에서 깨어났을 때,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나는 현실로 돌아와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삼 개월 후에 이 글을 쓰면서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 장면은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