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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Dec 03. 2023

<다정 언니>


1. 첫 만남


이름처럼 정이 심히 많은 언니가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던 24평 복도식 아파트 단지에 살 때 만나게 된, 같은 성당 구역의 “자매님”이었다. 성당은 거주하는 곳에 따라 구역이 나뉘어져서, 같은 구역에 살게 되면 정해진 성당에 다니게 되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각 교인의 집을 돌면서 성당 ‘반모임’을 했었는데, 교회로 치자면 구역예배 정도가 되겠다. 그 당시에 반모임에 오는 언니 동생들은 나이도 천차만별, 학력이나 전직 직업도 각인각색이었으나, 아이들이 한 살부터 유치원생까지 엄마가 곁에 꼭 있어주면 좋은 나이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신심이 깊어서라기보다는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고 내가 24시간 돌봄을 했기에, 어른과의 대화와 교류가 절실했고, 일종의 육아 공동체도 필요했기에 반모임에 빠지지 않고 출석을 했었다.


첫 모임에서 다정 언니를 보고 나는 속된 말로 쫄았었다.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고, 말 사이사이에 추임새로 “썅~”, “지랄~,” “옘병~”, 이런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자신이 고등학교 때는 교복치마를 다리 사이에 접어 옷핀을 꽂고 다니던 껌 좀 씹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지 않아도 낯가리고 숫기 없는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그 언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모임 때마다 방바닥만 보게 되었었다.



2. 욕도 풍성 마음도 풍성


반모임이 끝나면 모임이 열렸던 집주인은 간단한 다과나 칼국수 또는 김치전 등 자신이 대접하고 싶은 음식을 대접하는 게 순서였다.


서로 도와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고 상이 차려지면, 그때부터 한 주간에 쌓였던 육아 스트레스와 남편과 시집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장이 열리게 된다.

모르는 사람에게 얘기하기에는 챙피하기도 하고,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되는 내용들이 서로 배틀을 벌이듯이 오고 가고. 거기에는 빠짐없이 다정 언니의 추임새와 함께 속 후련해지는 <쌍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그 쌍욕의 마력에 푹 빠지게 되어, 언니가 욕을 남발할 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언니는 욕만 찰지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솜씨도 좋았고, 없는 살림에 동생들한테 뭐라도 하나 퍼 주려고 했었다. 어느 날은 계란 간장조림을 만들어서 네 살밖에 안된 아이 손을 잡고 각 동을 돌며, 우편함에 반찬통을 넣어주고 가기도 했다.



3. 재테크도 잘해


다정 언니를 포함한 세 명이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또 다른 문학소녀 언니는 용인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했다.


아파트는 초 스피드로 지어지고, 2년 뒤에는 모두가 흩어지게 되었다. 이사 후에도 종종 만나기도 하고, 집들이에 가서 새 가구로 예쁘게 꾸며진 집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게 벌써 십칠 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 사이에 분양받은 아파트 값은 몇 배로 뛰었고, 이재에 눈이 밝았던 언니들은 주식으로도 큰돈을 굴리며 수익을 보게 되었었다.



4. 어제의 근황


어제 일 년 만에 내가 편애하는 언니들을 만났었다. 오전 11시에 약속된 모임이었으나, 내 개인 스케쥴로 인해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의왕 타임 빌라스에서 쇼핑 중이니 일단 와서 주차하고 전화를 하라고 했다. 주차를 하고 전화를 했더니, 나의 힐러 언니가 일층의 막스마라 매장에 있으니 거기로 오라고 한다.


매장에 들어가니 저 쪽 거울 앞에서 세 명의 언니들이 다정 언니의 가방을 골라주느라 시끌벅적했다. Fuchsia 색 위빙 복주머니 스타일 백과 베이지색 롱 클러치 백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정 언니 스타일은 당연히 fuchsia 위빙 백인 걸 알지만, 나와 힐러 언니는 이제는 좀 점잖은 자리를 위해 베이지색 클러치를 권했다.


옆에 있던 다른 언니가 갑자기 "한 달에 천만 원씩 버는데 두 개 다 사버려! "라는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하길래, 나는 놀래서 "언니, 천만 원씩 벌어요?" 했더니, 힐러 언니가 나를 잡아끌어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냥 하는 말이다. 너 왜 이렇게 순진하냐?"라고 했다.

켁. 이 언니들 블러핑 좀 할 줄 아네.


쇼핑을 마치고 쇼핑몰의 한적한 계단에 앉아서 근황 토크를 했다. 다정 언니는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그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요양원으로 일을 하러 다닌다고 한다. 키도 크고 늘씬한 언니는 그전에는 요가 강사를 몇 년 동안 했었다. 정열적인 언니는 잠시도 집에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한 시간 반 남짓의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찰진 욕을 들으며 배꼽이 흔들린 날이었다.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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