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컴퓨터 앞에서 딸아이가 게임이 아닌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뭘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라 궁금해만 하다가 어제서야 물어봤다. 뭘 하고 있는 거냐고.
학교에서 과 조교와 선배들이 분위기를 만들면서, 학생회 총무일을 맡아주면 너가 잘할 것 같다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과에서 필요한 물품들 견적서 내고 있다고 하면서, 약간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을 한다. 나는 자동으로 실소가 터져 나오면서, 그 귀찮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왜 맡았냐고 타박을 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애가 이런 일을 맡았으면 잘했다고 응원을 해줘야지. 엄마가 부정적인 말만 한다."라고 역공을 한다.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학교 때는 졸업을 못 할 정도로 학교를 못 나갔었는데, 선생님들의 배려로 결석을 할 때마다 병결과 온갖 체험학습 기간을 끌어다 쓰고, 막판에는 아프더라도 한 시간만 교실에 앉아 있다가 조퇴를 하도록 해서 겨우 졸업을 할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상황이 조금 나이지기는 했었지만, 결석과 조퇴로 점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아이가 그 와중에 내신이라도 챙겨서 두 번째 해에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다.
십 대 때의 학교생활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아프기 전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니, 의욕이 넘쳐나서 학교에서 뭐든지 맡아하려고 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선생님들과 친한 엄마들은 딸아이는 어디다 내놔도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 아이라는 말들을 하곤 했었다.
그런 아이였기에 학교 학생회 일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속으로 많이 좋아했겠구나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나는 아이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데서 빈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픈 아이와 엄마의 마음까지도 헤아려 주시고, 어루만져 주셨던 중학교 때의 김은선 선생님, 고밝아 선생님, 정지선 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들 덕분에 이렇게 제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었음에 오늘 또한 번 감사한 마음을 보내드립니다.